토론:안동 삼산정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삼산(三山) 류정원(柳正源, 1702~1761)이 조선 영조(英祖) 26년(1750)에 건립하여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삼산은 동왕 11년(1735)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간에 이르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위에 담장이 있고 마당 끝에는 큰 바위가 있다. 선생의 덕을 기리며 집안 자손을 가르치는 가학의 요람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조선시대의 문신 삼산 류정원(三山 柳正源, 1702-1761)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조선 영조(英祖) 26년(1750)에 건립한 정자이다.
류정원은 영조 11년(1735)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마을 입구에 있는 삼산 종택과 함께 이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겹집 형태의 건물은 왼쪽에 ‘ㄱ’자형의 대청마루를 두고, 오른쪽 전체와 왼쪽 뒷편에 온돌방을 배치했다.
건물의 전면에 앞으로 살짝 튀어나온 쪽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난간이 끝나는 양쪽 끝은 낮은 나무 판벽을 세워 막았다. 왼편에 출입을 위한 계단이 있는데, 정자에 오르려면 계단과 마루 사이에 나무판으로 만든 문을 통과해야 한다.
종택과 정자 모두 류정원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삼산’이라는 류정원의 호는 집 앞의 산에 세 개의 봉우리가 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후 마을의 이름이 되기도 하였다.
현재 류정원의 후손들이 집안 자손들을 가르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1차 수정
삼산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삼산 류정원(三山 柳正源, 1702~1761)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영조 26년(1750)에 건립한 정자이다.
류정원은 영조 11년(1735)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영조(1724~1776 재위)의 신임을 얻어 장헌세자(1735~1762)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다. 말년에 고향으로 돌아온 뒤에는 마을 입구에 있는 삼산종택과 함께 이 정자를 지었다. ‘삼산’이라는 류정원의 호는 집 앞 산에 세 개의 봉우리가 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삼산정은 겹집 형태의 건물로, 왼쪽에는 대청마루를 두고 오른쪽 전체와 왼쪽 뒤편에는 온돌방을 배치했다. 전면에 쪽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난간이 끝나는 양쪽 끝은 낮은 나무 판벽을 세워 막았다. 왼편에 출입을 위한 계단이 있는데, 정자에 오르려면 계단과 마루 사이에 나무판으로 만든 문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은 후손들이 류정원의 덕행을 기리고 집안 자손들을 가르치는 가학의 요람으로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