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관왕묘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중국의 명장 관우(關羽)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왕묘를 지어서 서민에게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사에 의해 관왕묘가 지어졌다. 조선 선조(宣祖) 31년(1598)에 서울 남대문 밖에 관왕묘를 지었고 같은 해에 성주, 강진, 안동, 남원에도 건립하였다. 안동의 관왕묘는 이 곳에 주둔한 명나라 진정영도사인 쉬후첸(薛虎臣)이 처음 건립하였다.
묘안에는 화강암으로 된 석상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는 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마주보고 있는 것을 꺼려하여 동왕 39년(1606)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으며, 1904년에 해체․복원하였다.
이 건물은 산의 경사가 급한 곳에 터를 잡았다. 누의 좌우에 동․서재(東․西齋)가 있고 계단을 올라가면 ‘무안왕묘(武安王廟)’라는 편액을 단 문이 있으며 더 들어가면 담장에 싸인 정전이 있다. 정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집이다. 건물 내부의 서쪽 벽에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동쪽 벽에는 적벽화전도(赤壁畵全圖)가 그려져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관왕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關羽, ?-219)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세워졌었다.
안동의 관왕묘는 조선 선조 31년(1598)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조선에 온 명나라 상수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한 것이다. 원래는 안동향교 맞은편에 있었는데, 문묘와 사당이 마주하고 있는 것을 꺼려 17세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에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경내에는 출입문인 광감루, 동서재, 사당의 입구인 묘우삼문, 사당인 무안왕묘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무안왕묘 안에는 관우의 석상이 있고, 관우상 좌우에는 관우를 따랐던 부하들의 석상 4구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우상은 수염이 난 얼굴에 무장의 의상으로 채색되어 있다.
사당 내 오른편에 세워져있는 비석은 이곳이 조성될 때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이 전쟁에 참여했다는 내용과 장수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는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에 제사를 지낸다.
- 이건 시기는 선조 39년(1606)이라는 설과 인조 14년(1636)이라는 설이 있다.
- 관우상 우측에는 무장인 주창, 관평의 석상이 있고, 좌측에는 문사인 왕포, 조루의 석상이 있다. 벽에는 삼고초려도와 적벽화전도가 그려져 있다.
- 광감루 입구에 있는 인왕석상과 무안왕묘 건물 내의 연화대좌석은 신라 때의 것으로, 조선시대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면서 인근에 있던 사찰 관련 석물을 가져다 쓴 흔적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관왕묘는 중국 촉나라의 장수였던 관우(關羽, ?~219)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다. 관왕묘는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에 머물던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안동 관왕묘는 선조 31년(1598) 명나라 장수 설호신(薛虎臣)이 건립하였다. 원래 안동향교 맞은편에 있던 것을 현재 위치로 옮겨 지었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선조 39년(1606)이라는 설과 인조 14년(1636)이라는 설이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04년에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관우의 출생일인 음력 5월 13일과 기일인 10월 21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내에는 출입문인 광감루, 동재·서재, 내삼문인 묘우삼문, 사당인 무안왕묘가 있다. 무안왕묘 안에는 관우의 석상이 모셔져 있고, 관우상 양옆에는 관우를 호위하던 네 명의 장군을 나타내는 석상이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 세워진 관왕묘 중 관우의 석상을 모신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화강암으로 만든 관우상은 얼굴에 긴 수염이 있고 무장의 의복을 입은 모습이다. 사당 안에 있는 비석은 관왕묘가 조성될 때 세워진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가 전쟁에 참여했다는 내용과 장수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