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사빈서원
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서원은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과 그의 다섯 아들의 덕(德)을 추모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조선 숙종(肅宗) 11년(1685)에 사림과 자손들에 의해 지어졌다. 묘호(廟號)는 ‘경덕사(景德祠)’라 했다. 동왕 35년(1709)에 동구밖 사수(泗水)가로 옮겨 지으면서 ‘사빈서원’이라 하였다가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고, 고종(高宗) 19년(1882)에 다시 건립되었으나 현재는 강당(講堂)과 주사(廚舍)만 남아 있다. 임하댐 건설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에서 1987년에 현 위치로 이전 되었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규모가 제법 큰 편에 속한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 기둥을 혼용하여 세웠는데, 중앙 대청은 정면 4칸으로 매우 넓게 하였다.
건물 정면에는 ‘경덕사’라는 편액이 있는데 이것은 묘우의 현판을 강당으로 옮긴 것이다. 주사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口’자형 기와집으로서 전체적으로는 남서향으로 배치되었다. 강당은 많은 변형과 중수의 흔적이 있으나, 주사는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사빈서원은 조선시대의 학자 김진(靑溪 金璡, 1500~1580)과 그의 다섯 아들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자손들과 지역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김진은 중종(中宗) 20년(1525) 생원시에 합격하였지만, 이후 학문에만 전념하며 천전리 곳곳에 서당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의성김씨는 김진의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면서 후손들이 대대로 번성하면서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으로 발전하였다.
사빈서원은 숙종 11년(1685) ‘경덕사(景德祠)’라고 이름한 사우에 여섯 명의 위패를 함께 모시면서 시작되었으며, 숙종 35년(1709)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고종 19년(1882) 임하면 사의리에 모임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강당과 제사 준비를 위한 주사(廚舍) 건물만 다시 세웠다. 이후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7년 임하리로 옮겼던 것을 2011년에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기면서 여러 건물들을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강당인 흥교당(興敎堂)과 주사 외에도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기숙사인 동서재, 문루, 전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
- 김진의 다섯 아들은 김극일(金克一, 1522~1585), 김수일(金守一, 1528∼1583),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김명일(金明一, 1533∼1569), 김복일(金復一, 1541∼1591)이다. 다섯 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한 그의 아들들 이후 김진의 집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 서원의 건립 시기 및 훼철 시점은 서원 홈페이지 설명 기준으로 작성. (국가문화유산포털의 설명은 ‘서원 승격’ 이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이며, 훼철 시점도 차이가 있으므로 확인 필요함.)
- 사빈서원은 숙종 11년(1685) ‘경덕사(景德祠)’라고 이름한 사우에 여섯 명의 위패를 함께 모시면서 시작되었으며 -> 더 자세히 쓸 것인지 / 사빈서원의 전신은 숙종 7년(1681)에 세워진 경산정사(景山精舍)이다. 김진의 묘 근처에 1675년 사우를 짓고 그의 유상을 봉안하였으며, 이후 1681년 다섯 아들까지 한 사당에 모시고 향사(享祀)하고자 해, 숙종 11년(1685) 다섯 사람의 위패를 봉안한 후 ‘경덕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곳이 1709년에 사수(泗水) 근처로 이건하면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사빈서원 홈페이지 설명 중)
- 문화재청 및 향문 설명에 ‘2005년에 중창 사업 계획에 따라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해당 사업정보까지 확인할 것인지 고민 필요. / 문맥상 2005년부터 시작해 2011년에 완공된 것으로 보임.
1차 수정
서원은 조선시대에 세워진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사빈서원은 조선시대의 학자 청계 김진(靑溪 金璡, 1500~1580)과 그의 다섯 아들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김진은 중종 20년(1525) 생원시에 합격한 후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김진의 다섯 아들 김극일(金克一, 1522~1585), 김수일(金守一, 1528∼1583), 김성일(金誠一, 1538~1593), 김명일(金明一, 1533∼1569), 김복일(金復一, 1541∼1591)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고, 후손들이 대대로 번성하면서 의성김씨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이 되었다.
사빈서원은 숙종 11년(1685) 김진과 다섯 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덕사(景德祠)로 시작되었으며, 숙종 35년(1709)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고종 5년(1868)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고종 19년(1882) 임하면 사의리에 모임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강당과 제사 준비를 위한 주사(廚舍) 건물만 다시 세웠다. 이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7년 임하리로 옮겼던 것을 2011년에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기면서 여러 건물들을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강당인 흥교당(興敎堂)과 주사 외에도 사당인 경덕사, 기숙사인 동·서재, 문루, 전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