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광풍정
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닦아 영남학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는 경당(敬堂)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건립한 누각이다. 조선 헌종(憲宗) 4년(1838)에 지역의 유림들에 의해 개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동북향이며 전체적으로 마루공간과 온돌방이 대각선 대칭형태로 구성된 듯한 독특한 정자 건축이다. 전면의 누 아래 기둥은 막돌기단 위에 큼직한 덤벙주초를 놓고 세워진 것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1630년대 지은 누각을 1838년(헌종 4)에 안동 지역의 유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한 것이다.
장흥효의 본관은 안동이고, 김성일(金誠一), 류성룡(柳成龍)의 문하에서 배웠으며 이후 정구(鄭逑)의 문하에서도 학문을 하였는데 이들로부터 배운 공부의 핵심은 심학(心學)이었다. 그는 관직 진출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사후에 지평에 추증되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배향되었다.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 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1차 수정
광풍정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1630년대에 지은 누각을 1838년에 안동 지역의 유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한 것이다.
장흥효는 김성일(金誠一, 1538~1592),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정구(鄭逑, 1543~1620) 등 당대의 대학자들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는 관직 진출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는데, 이러한 공로로 사후에 관직에 추증되었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모셔졌다.
광풍정 뒤편에는 자연암석 위에 세워진 제월대(霽月臺)라는 누각이 있다. 광풍정과 제월대는 서로 짝을 이루는데, 이것은 중국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따온 것이다. 광풍과 제월은 각각 ‘맑은 바람’과 ‘비 갠 달빛’을 의미하며, 선비의 훌륭한 인품을 나타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