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주 수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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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곳은 백제 시대에 세워진 수원사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웅천주(熊川州)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이미 백제시대에 수원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석탑의 일부분이 남아 있으며, 1967년 발굴조사 때에 곱돌로 만든 작은 탑과 청동으로 만든 청동방울 및 탑의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1991년 2차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와 4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백제 시대에 세워진 수원사(水源寺)의 옛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수원사와 관련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는 기록이 있다. 신라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때 흥륜사(興輪寺)에 있던 승려 진자(眞慈)가 꿈에서 만난 승려로부터 웅천주(熊川州)에 있는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만났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는 수원사가 이미 창건되어 경영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의 발굴조사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조사는 1967년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개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2차·3차 조사는 1989년과 1991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시굴·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절터 중앙에는 석탑지(石塔址)가 있으며, 그 북쪽으로 5기의 건물지와 1기의 추정 건물지가 밀집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이 남북으로 배치되고 남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남고북저의 지형에 남쪽이 가로막혀 있고 대신 북쪽으로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동종(銅鐘)과 석불좌상 조각, 나한상의 머리 부분, 곱돌로 만든 소탑, 기와류 및 토기·청자·백자의 조각 등이 있는데,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것들로서 백제 때의 유물로 추정될 만한 것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곳은 백제의 사찰 가운데 그 명칭 및 관련 일화가 기록되어 전하는 몇 안되는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는 웅진도읍기 백제의 불교문화와 미륵신앙과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1차 수정

이곳은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수원사의 옛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신라 진지왕(576~579 재위) 때 흥륜사에 있던 승려 진자(眞慈)가 꿈에서 한 승려를 만났는데, 웅천주(熊川州)에 있는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는 수원사가 이미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사지는 1967년, 1989년, 1991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절터 중앙에는 석탑지(石塔址)가 있으며, 그 북쪽으로 5기의 건물지와 1기의 추정 건물지가 밀집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이 남향을 하고 건물들을 남북 방향으로 배치하는데 반해, 수원사는 남고북저의 지형에 남쪽이 가로막혀 있고 대신 북쪽으로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동종, 석불좌상 조각, 나한상의 머리 부분, 곱돌로 만든 소탑, 기와류 및 토기·청자·백자의 조각 등이 있으며,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6세기 전반 -> 6세기 후반
    •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해당한다. ->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 '만들어진 것들이다' 뒤에 내용 추가 -> 백제시기의 유물은 보이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고려시대의 동종 등이 출토되어 그 연원을 알 수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의견 누락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건물 방향에 대한 내용이 첨부된 자료와 달라서 정확한 자료 확인이 필요해 보입니다.(건물의 배치는 남향으로 생각된다. 다만 지형은 북쪽이 확 트여 있어 건물이 정상적으로 배치되면 북향이 되어야 하는데, 이 점은 고찰의 대상이 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공주수원사지(公州水源寺址))])
    • 첫문장 이후 두 번째 단락으로 이어지는 곳에 “수원사에는 미륵선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미륵선화는 고려시대까지 신선을 부르는 말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로 연결되면 더 매끄러울 듯.
    • 마지막 단락의 유물 설명은 가독성이 좋게 어순을 바꿔주면 더 좋겠습니다. -> 예시 : 이곳에서는 동종, 석불좌상~등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대부분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2차 수정

이곳은 백제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수원사의 옛터로 추정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신라 진지왕(576~579 재위) 때 흥륜사에 있던 승려 진자(眞慈)가 꿈에서 한 승려를 만났는데, 웅천주(熊川州)에 있는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만났다고 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6세기 후반에는 수원사가 이미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사지는 1967년, 1989년, 1991년 총 세 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절터 중앙에는 석탑지(石塔址)가 있으며, 그 북쪽으로 5기의 건물지와 1기의 추정 건물지가 밀집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이 남향을 하고 건물을 남북 방향으로 배치하는데 반해, 수원사는 남고북저의 지형에 남쪽이 가로막혀 있고 대신 북쪽으로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동종, 석불좌상 조각, 나한상의 머리 부분, 곱돌로 만든 소탑, 기와류 및 토기·청자·백자의 조각 등이 있으며,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