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태조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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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조어진
Portrait of King Taejo of Joseon
조선태조어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조선태조어진
영문명칭 Portrait of King Taejo of Joseon
한자 朝鮮太祖御眞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0 (풍남동3가, 경기전 경기전) 어진박물관
지정(등록) 종목 국보 제317호
지정(등록)일 2012년 6월 29일
분류 유물/일반회화/인물화/초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폭
웹사이트 조선태조어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어진은 왕의 초상화이다. 조선태조어진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로 조선왕조를 상징한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선조들이 살았던 조선 왕실의 본향이다. 조선은 건국 후 태종 10년(1410)에 조선왕실이 일어난 전주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다. 그 후 경기전에 모신 태조어진이 낡아서, 고종 9년(1872)에 태조어진을 모사*하여 다시 모셨다.

태조어진은 전주를 비롯해 태조가 태어난 영흥, 고구려의 왕도 평양, 신라의 왕도 경주, 고려의 왕도 개경 등 지방 5곳에 모셨으나 현재는 전주 경기전의 태조어진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권위와 위엄이 돋보이는 태조어진은 왕이 평상시 집무할 때 입는 청색의 곤룡포에 모자인 익선관을 쓰고 검은 가죽신을 신은 전신상으로, 가슴과 어깨에는 왕을 상징하는 다섯 발톱을 가진 용이 그려져 있으며, 비단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색감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으로 그려져 색감이 은은하고 깊다.

또한 고종 9년에 새로 모신 태조어진은 경기전의 태조어진을 모사하여 숙종 14년(1688)에 한양 영희전**에 모신 어진을 다시 모사한 것이어서, 조선 초기의 어진 제작기법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현재 경기전 정전에 모셔진 태조어진은 1999년에 모사한 것이며, 국보로 지정된 조선태조어진 진본은 어진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 모사(模寫): 어떤 그림을 본보기로 그와 똑같이 본을 떠서 그림
  • 영희전(永禧殿): 조선시대 태조·세조·원종·숙종·영조·순조의 어진을 모셨던 한양의 전각

영문

Portrait of King Taejo of Joseon

This portrait enshrined in the main hall of Gyeonggijeon Shrine depicts the founde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i Seong-gye (1335-1408), known posthumously as King Taejo (r. 1392-1398). Made in 1999, it is a copy of a portrait made in 1872 that had been kept in the shrine until the 2000s and which was moved in 2010 to the nearby Royal Portrait Museum to ensure its preservation. The 1872 portrait, designated as a National Treasure in 2012, is of particular value as it is the only remaining Joseon-period portrait of Joseon’s founding king.

In Korea, a portrait is traditionally exhibited in a shrine as a symbolic object of ancestor veneration. During the Joseon period, there were several shrines across the country where a portrait of King Taejo was enshrined. This required the production of copies of the original portrait. As the portraits were subject to deterioration over time, they were also reproduced over the years as needed.

The first portrait of King Taejo enshrined at Gyeonggijeon Shrine was made in 1409 based on the original 1398 portrait. In 1688, the 1409 portrait was used to create a portrait for Yeonghuijeon, a shrine in the capital dedicated to the Joseon kings. By 1872, the 1409 portrait had deteriorated, so the 1688 portrait was used to create a new portrait for Gyeonggijeon Shrine. Thus, despite having been made in the late 19th century, the 1872 portrait preserves the characteristic features and style of the early Joseon period.

Painted on a silk canvas, the portrait uses a coloring technique whereby paint is applied to the back of the canvas to let it seep through to the front, thus creating deep and subtle colors. The king is depicted in an imposing and stately manner appropriate for a founding king. He is seated on a throne wearing his daily uniform, consisting of a blue robe, a winged cap, and black leather boots. The shoulders and chest of the robe are decorated in gold with designs depicting five-clawed dragons, a symbol of the king.

영문 해설 내용

경기전 정전에 모셔진 이 초상화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 1392-1398)를 그린 것이다. 2000년대까지 정전에 모셔져 있던 1872년 본을 1999년에 모사한 것이며, 원본은 보존을 위해 2010년 어진박물관으로 옮겨 모셨다. 1872년 본은 2012년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태조 어진 중 유일하게 남아 있어 특별한 가치가 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사당에 초상화를 모셔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곳곳에 태조의 어진을 모신 진전이 있었다. 따라서 여러 모사본을 만들어야 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진이 훼손되는 경우에도 모사본이 만들어졌다.

처음 경기전에 모신 어진은 1398년 경주에 모셔진 본을 모사하여 1409년에 만들었다. 1688년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한양에 영희전을 세울 때에는 당시 경기전 본을 모사하였다. 세월이 지나 경기전에 모신 어진이 낡게 되자, 1872년 영희전 본을 모사하여 다시 모셨다. 따라서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어진임에도 불구하고, 태조어진은 조선 초에 제작된 어진의 원래 모습과 양식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비단의 뒷면에 색을 칠하여 색감이 앞으로 배어 나오게 하는 배채법으로 그려져 색감이 은은하고 깊다. 태조는 조선을 건국한 왕으로서의 권위와 위엄이 돋보이는 모습이다. 평상시 입는 청색 곤룡포에 익선관을 쓰고 검은 가죽신을 신은 채 앉아 있다. 가슴과 어깨에는 왕을 상징하는 다섯 발톱을 가진 용이 금으로 그려져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