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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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봉영당
Yubongyeongdang Shrine
유봉영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유봉영당
영문명칭 Yubongyeongdang Shrine
한자 酉峰影堂
주소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 182번지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280호
지정(등록)일 1985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69㎡
웹사이트 유봉영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유봉 영당은 윤증(尹拯, 1629-1711)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올리는 사당이다. 윤증이 죽고 난 후에 그를 따르는 유생들이 강당인 경승재와 함께 영당을 세우고 1744년(영조 20)에 윤증의 영정을 영당에 모셨다. 영당의 이름을 유봉으로 정한 까닭은 이곳의 지명이자 윤증의 호가 유봉이기 때문이다. 윤증의 호는 명재(明齋) 또는 유봉이고 파평인(坡平人)이며 시호(諡號)*는 문성文成이다. 1642년(인조 20)에 금산에서 아버지 윤선거를 비롯하여 유계와 권시, 김집, 송시열 등에게서 배웠다. 윤증은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아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나가지 않았고 성리학에 전념하여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유봉 영당은 영당·경승재, 고택 유허지**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인 경승재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영당은 경승재의 오른쪽에 있는데 앞면 3칸․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영정은 중앙에 모셔져 있다.


  • 임금이나 이름난 유학자가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기리어 주는 이름
  • 역사적 사실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고 유물이나 문화재가 없는 곳
  • 새 날개 모양의 장식

영문

Yubongyeongdang Shrine

This shrine is dedicated to Yun Jeung (1629-1714, pen names: Myeongjae, Yubong), a scholar of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Yun was the son of a prominent Confucian scholar, Yun Seon-geo (1610-1699). He was also a student of the many outstanding scholars of the time, such as Yu Gye (1607-1664), Gwon Si (1604-1672), Kim Jip (1574-1656), and Song Si-yeol (1607-1689). Although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t the royal court, he remained devoted to his studies, particularly, to the study of rites. After he turned 40, he built a lecture hall in this village, where he taught younger scholars.

In 1744, Yun Jeung’s followers built a lecture hall, named Gyeongseungjae, and this shrine, where they placed his portrait. The old lecture hall, where Yun taught his students, collapsed around 1940.

A ceremonial ritual to Yun Jeung is performed here every third and ninth month of the lunar year.

영문 해설 내용

이 영당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윤증(1629-1714, 호: 명재, 유봉)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윤증은 성리학의 대가인 윤선거(1610-1669)의 아들로, 아버지를 비롯하여 유계(1607-1664), 권시(1604-1672), 김집(1574-1656), 송시열(1607-1689)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에게 수학하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특히 예학에 밝았다. 40세가 되던 해에는 이곳 마을에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1744년 윤증을 따르는 유생들이 강당인 경승재와 함께 영당을 세우고, 윤증의 영정을 모셨다. 윤증이 강학했던 강당은 1940년경에 헐리고 터만 남아 있다.

매년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