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용당리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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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용당리 우물
Well in Yongdang-ri, Buyeo
부여 용당리 우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여 용당리 우물
영문명칭 Well in Yongdang-ri, Buyeo
한자 扶餘 龍塘里 우물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리 858-1번지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387호
지정(등록)일 2004년 4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주거시설
시대 백제
수량/면적 1식
웹사이트 부여 용당리 우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우물이 자리한 이곳은 ‘부여두리’라는 자연 마을로 부여 왕씨의 하나인 부여서씨가 거주한 지역으로 전해오며 오래전부터 만가대*(萬家垈)라 불리어 왔다.

우물의 밑바닥은 땅을 파서 잘 다듬은 석판을 깔고 그 위에 잘 다듬은 각진 석재를 장방형으로 겹쳐 쌓아 올리다가 중간부터는 크기가 다른 자연석 단면을 이용하여 원형으로 쌓았고 지상부의 맨 위쪽에는 부정형 사각의 긴 돌로 십자 맞춤하여 井자형을 이루었다.

최근까지 사용하여 井자형으로 맺은 우물 상단의 석재 부분은 매우 심하게 닳아 있어 오랜 세월 동안 이용된 역사의 흔적을 보여준다.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이용하여 쌓아서 만든 수준 높은 공법의 우물이며, ’96년경에 조사된 굴을 판 후 목재를 이용하여 만든 ‘구아리 백제우물 유적’과 매우 흡사한 구조로 사비 시대에 유행했던 백제우물 양식의 하나로 추정되며, 백제 우물의 형식을 밝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만가대 : 집이 많다는 뜻

영문

Well in Yongdang-ri, Buyeo

This well is presumed to have been made by the people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during the 6th-7th centuries.

The well was constructed with advanced stone masonry techniques. After the well was dug, stone slabs were laid on the base, and square stones were stacked to form walls inside the well. On the topmost part of the well, structure shaped like a number sign (#) was placed to be used as a support for the well’s cover.

The village in which this well is located is a clan village of the Buyeo Seo Clan, which was founded by the son of Baekje’s last king. This village has also been called “Mangadae,” meaning “a site of ten thousand households,” suggesting this well was used by many people.

영문 해설 내용

이 우물은 6-7세기에 백제 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우물은 수준 높은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땅을 파서 잘 다듬은 석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장방형 석재를 쌓아서 벽을 만든다. 우물의 맨 위에는 井자형의 시설을 올려서 뚜껑을 받칠 수 있도록 했다.

우물이 위치한 이 마을은 부여서씨의 집성촌으로, 부여서씨의 시조는 백제 마지막 왕의 아들이었다. 이 마을은 ‘10,000호의 집이 있던 곳’이라는 뜻의 ‘만가대’라고도 불렸으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우물을 사용했다는 것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