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신도비
| 이색 신도비 Stele of Yi Sae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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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색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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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명칭 | 이색 신도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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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문명칭 | Stele of Yi Saek |
| 한자 | 李穡 神道碑 |
| 주소 |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 (영모리, 문헌서원 내) |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1984년 5월 17일 |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 시대 | 고려시대 |
| 수량/면적 | 1기 |
| 웹사이트 | 이색 신도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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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해설문
국문
2021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한 비석으로, 무덤 앞이나 남동쪽에 세운다. 신도(神道)는 신이 묘에 이르는 길을 뜻한다.
이색의 신도비 서(序)와 명(銘)은 1405년(태종 5)에 하륜(河崙)이 지었으나 신도비는 1433년(세종 15)에 세워졌다. 비문의 글씨는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이며 서예가인 공부(孔俯)가 썼다. 그 후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666년(현종 7)에 후손들이 다시 세웠다. 다시 세운 신도비는 하륜의 찬문(撰文)을 이색의 손자 이맹균(李孟畇)의 글을 일부 인용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음기(陰記)*를 썼다. 그 후 신도비 앞면은 1904년 당초 비문을 깎아내고 이용원(李容元)이 서문을, 송병선(宋秉璿)이 명(銘)을 짓고, 글씨는 후손 이용직(李容稙)이 썼다. 신도비 북쪽에는 이색의 묘가 있다.
- 음기: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2026
고려 말의 문신이자 대학자로, 고려삼은(高麗三隱) 중 한 분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최초 신도비명은 태종 5년(1405)에 하륜(河崙)이 지었고, 세종 15년(1433)에 세웠다. 비문의 글씨는 조선 초 서예가인 공부(孔俯)가 썼다. 그 후 정유재란(1597년) 때 병화로 인하여 소실되었던 것을 현종 7년(1666)에 후손들이 재건하였다
재건한 신도비명은 앞면에 최초 지었던 하륜의 글을 사용하고, 뒷면 글은 이색의 손자 이맹균(李孟畇)이 작성한 글을 인용하여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 글씨는 인조 때 문신이자 서예가인 12대손 이수경(李壽慶)이 쓰고, 신도비의 전서(篆書) 제목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그 후 1904년에 앞면의 하륜이 지은 글을 깎아내고 수정하였는데, 이조판서 이용원(李容元)이 서문,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명(銘)을 짓고, 후손 이용직(李容稙)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절개를 변치 않았고’,‘도학과 문장이 진실로 한 세상에 크게 이루었다.’고 하였다.
이맹균의 글에 의하면, 최초 신도비는 묘역에서 동남 방향 33보(步) 지점에 세웠다고 한다. 현재 신도비는 묘역과 145미터 거리에 위치하는데, 이는 1904년 앞면을 깎아 다시 세울 때 변동된 것으로 보인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영문
Stele of Yi Saek
2021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Yi Saek (1328-1396),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who lived at the turn of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It is located to the southeast of his tomb.
Yi Saek was renowned for his steadfast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during the turbulent period in which he lived.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r. 1351-1374) of the Goryeo dynasty,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became an esteemed eminent scholar, and raised excellent students. After the establishment of the Joseon dynasty, he refused the requests of King Taejo (r. 1392-1398) that he serve in the central government and traveled around the country until his death.
This stele was first erected in 1433, but it was lost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7-1598. In 1666, the stele was erected again by his descendants.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had been composed by Ha Ryun (1347-1416), a student of Yi Saek, while the inscription on the back was composed by the scholar Song Si-yeol (1607-1689). In 1904, the inscription on the front was removed and replaced with a new inscription that was composed by the civil official Yi Yong-won (1832-1911) and was calligraphed by Yi Yong-jik (1852-1932), a descendant of Yi Saek. The stele consists of a square pedestal, the body stone, and a roof-shaped capstone.
2026
영문 해설 내용
2021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인 이색(1328-1396)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이색의 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색은 격동의 시대를 사는 동안 끝까지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킨 인물이다.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에는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고, 대학자로 이름을 날리며 뛰어난 제자들을 길러냈다. 조선 건국 이후 조정에 머물라는 태조(재위 1392-1398)의 권유를 끝내 거절하고 전국을 유람하던 중 생을 마쳤다.
이색의 신도비는 1433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 1666년 후손들이 신도비를 다시 세웠으며, 이때 앞면의 비문은 이색의 제자인 하륜(1347-1416)이 지었고, 뒷면의 글은 학자인 송시열(1607-1689)이 지었다. 이후 당초 비문을 깎아내고 1904년 문신 이용원(1832-1911)이 지은 비문을 후손 이용직(1852-1932)이 써서 다시 새겼다. 신도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2026
참고자료
- 이색신도비 (李穡神道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401270000
- 이색신도비 (李穡神道碑),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97620&cid=40942&categoryId=37404
- 이색(李穡),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44640
- 신도비(神道碑),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32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