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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간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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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간암재
대표명칭 창녕 간암재



해설문

국문

창녕 간암재는 6대에 걸쳐 8명의 효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창녕장씨 집안의 대표 재실이자 임진왜란 때 창녕 의병들이 모여 싸운 역사적인 장소이다.

숙종 28년(1702) 고강리사로 출발하여 순조 6년(1806) 고강서원(高岡書院)으로 승격되었다.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으로 허물어졌으나 고종 10년(1873)에 철폐 당시의 목재를 활용해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고쳐 지은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대문채·고방채·관리사로 구성되는 재실의 기본 형식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 재실 앞에 효행을 기리는 효자각을 배치한 점은 이 건물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홑처마에 사래*를 올려 독특한 처마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아궁이 위에 눈썹지붕을 덧댄 모습도 특징적이다.

창녕 간암재는 효행 정신과 지역 역사를 풍부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유래와 관련된 자료가 다양하고, 창녕지역 전통 재실과 근대 한옥의 특성을 함께 담고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 사래(蛇羅): 추녀 끝에 덧대어 겹처마를 만들어 주는 부재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