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서동사
| 고흥서동사 |
|
| 대표명칭 | 고흥서동사 |
|---|---|
| 한자 | 高興西洞祠 |
| 주소 |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 18 |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
| 지정(등록)일 | 1987년 9월 18일 |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 소유자 | 여산송씨종중 |
| 관리자 | 여산송씨종중 |
| 수량/면적 | 1동 |
| 웹사이트 | 고흥 서동사,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
해설문
국문
서동사는 여산 송씨 출신 송간(宋侃, 1417~1492)을 주벽(主壁)으로, 그의 후손 송순례, 송대립, 송희립, 송건, 송홍연, 송상보, 송득운, 송진부, 송침과 생육신 김시습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서동사는 맞배지붕이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어졌다. 특이하게 후면으로 반 칸 폭의 퇴(退)를 두었다.
송간은 단종 때 충신으로 호는 서재(西齋)이다. 단종이 시해되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흥양(고흥) 마륜촌에 숨어 살았다. 조선 정조 9년(1785년) 송간을 주벽으로 고흥 류씨, 압해 정씨 인물들과 함께 두원면 운곡사(雲谷祠)에서 제향되기 시작했다. 정조 17년(1793년)에는 충강(忠剛)이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정조 20년(1796년)에는 송간이 은둔했던 곳인 동강면 마륜리 서재동(西齋洞)에 사당을 건립하고 세충사(世忠祠)라고 불렀다. 이후 여러 충신들을 추가로 모시면서 육충사(六忠祠)로, 1848년 서동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허물어졌으나, 1956년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워졌고 재동서원(齋洞書院)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재동서원은 서동사, 창효사(彰孝祠), 강당, 동재, 서재 등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동사는 여산송씨 출신의 문신 송간(1417-1492)을 중심으로, 그의 후손 송순례, 송대립, 송희립, 송건, 송홍연, 송상보, 송득운, 송진부, 송침과 학자이자 문신인 김시습(1435-1493)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송간은 단종(재위 1452-1455)이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었다가 세상을 떠나자, 고흥 지역의 깊은 산속에 숨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1785년 송간과 고흥류씨, 압해정씨 인물들을 함께 모신 운곡사라는 사당이 세워졌다가, 1796년 송간이 은둔했던 마륜리 서재동에 따로 사당을 세워 세충사라고 불렀다. 이후 여러 충신들을 추가로 모시면서 육충사라 불렀다가, 1848년 서동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서동사는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고, 1956년 지금의 자리인 재동서원 경내에 다시 세워졌다. 서원 경내에는 정문, 강당,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서동사 외에 창효사라는 사당이 하나 더 있다. 서동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맞배지붕을 올렸다. 사당 건물로는 특이하게 뒤쪽에 반 칸 폭의 퇴(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