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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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4년 7월 30일 (화) 16: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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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Archaeological Site in Goa-ri, Goryeong
대표명칭 고령 고아리(산 4-1번지 일원) 단독주택 신축공사부지 내 유적
영문명칭 Archaeological Site in Goa-ri, Goryeong



해설문

국문

본 유적은 ‘고령 고아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구릉의 동사면 말단에 위치하며, 7세기대부터 조선시대 전기에 이르는 건물지와 기와가마 등이 조사되었다. 3구역의 건물지군에서 나타나는 완사면을 계단상으로 조성한 대지에 주축이 맞는 건물들의 정연한 배치형태, 수막새의 문양, 적심의 축조공법, 전적이중기단 등의 특징은 백제지역에서 주로 보이는 기술들로서 당시 고령지역과 백제와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단판연화문수막새·전돌 등의 와전류, 이와 함께 출토된 단각고배·인화문토기편 등의 유물로 볼 때 7세기 전반에 처음 조성된 유적으로 판단되며, 기와가 대량으로 출토되고, 건물지의 규모가 상당하므로 당시 고령지역의 관아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 건물지군은 건물지 1호와 중복된 고려시대 기와가마의 존재로 볼 때 고려시대 이전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고령지역 관아는 쾌빈리 일대가 되고, 본 유적 일대는 기와가마를 조성하여 고령지역의 기와 생산을 담당하였다. 본 유적은 7세기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고령지역의 관아에서부터 기와생산지까지 한 지역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3구역에 조성된 7세기대 건물지군은 역사적·학술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이에 원지형보다 최대 5.4m 가량 복토하여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였고, 전적이중기단이 축조된 건물지 2호의 자리는 주변 일대와 함께 건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공원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 쉼터를 제공함과 동시에 지역의 역사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게 하였다.

영문

Archaeological Site in Goa-ri, Goryeong

This archaeological site, located on the eastern slope of a hill to the north of the ancient tombs of Goa-ri, is home to the remains of what is presumed to have been a local government office built in the 7th century and kilns built in the early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for the production of roof tiles for the Goryeong area. Artifacts, such as convex roof-end tiles with lotus designs, bricks and other ceramic construction materials, mounted dishes, and earthenware fragments with stamped designs, were also discovered on the site.

The structural remains of the local government office include terraces, several two-tier brick platforms, and pillar-base holes filled with rocks. These architectural elements, along with the convex roof-end tile designs, are characteristic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However, the office is presumed to have been used into the Unified Silla period (676-935). Following their excavation, the remains were topped with soil measuring up to 5.4 m in depth to aid in their preservation.

Overall, this archaeological site is of great historic and academic value in the understanding of changes in the governance and industry of the Goryeong area over time.

영문 해설 내용

고아리 고분군이 분포하는 구릉의 동사면 말단에 위치한 이 유적은 7세기에 조성된 관아로 추정되는 건물지와 조선 초에 조성되어 고령 지역의 기와 생산을 담당하던 가마가 분포되어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연화문 수막새와 전돌 등의 와전류, 굽다리접시, 인화문 토기편 등이 있다.

관아 건물지의 유구들은 계단식으로 조성한 대지, 전돌을 쌓아 만든 이중 기단, 적심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과 수막새의 문양은 백제 지역에서 주로 보이는 특징이다. 이 건물들은 통일신라 시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이후 최대 5.4m 가량 복토하여 유적이 훼손되지 않도록 보존하였다.

이 유적은 고령 지역의 통치와 산업 측면에서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