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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청마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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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청마산성
Cheongmasanseong Fortress, Buyeo
"부여 청마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여 청마산성
영문명칭 Cheongmasanseong Fortress, Buyeo
한자 扶餘 靑馬山城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1번지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34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삼국시대
수량/면적 415,808㎡
웹사이트 "부여 청마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성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전투에 유리한 산을 이용하여 쌓은 성을 말한다. 청마산성은 산의 능선을 따라 계곡을 감싸고 있는 형태로 쌓은 백제시대 산성이다.

성벽의 여러 곳에서 치(雉)나 문이 있던 흔적, 밖으로 물을 빼는 수구가 확인되었다. 성 안에서는 주로 백제 사비시기의 기와 조각이 나오지만,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도 있다.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건물터, 성벽 가까운 곳에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게 쌓은 장대터, 그리고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경룡사 등의 절터가 남아 있다.

이 산성은 백제시대 산성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성곽 축조 기술도 잘 보여준다. 사비도성의 동쪽 바깥에 위치하여 서쪽의 가림성, 북쪽의 증산성, 남쪽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수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치(雉) : 성벽에 오르는 적을 막기 위해 성벽 밖으로 내밀어 쌓은 돌출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청마산성은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 지역에 도읍을 두고 있던 6-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는 기원전 18년 한성(지금의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건국되었다가, 475년에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겼고, 538년에 사비로 다시 도읍을 옮겼다. 사비 도성의 동쪽에 세워진 이 산성은 서쪽의 성흥산성, 북쪽의 증산성, 남쪽의 석성산성 등과 함께 백제의 도읍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이었다.

이 산성은 월명산의 능선을 따라 쌓았다. 성벽의 여러 곳에서 치, 문이 있던 흔적, 밖으로 물을 빼는 수구가 확인되었다. 성 안에는 건물터,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높게 쌓은 장대터,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경룡사 등의 절터가 남아있다. 6-7세기에 만들어진 기와 조각뿐만 아니라 고려, 조선시대의 다양한 유물이 성 안에서 발견되었다.

전체 둘레는 9.3km로 백제의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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