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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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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Kiln Sites in Sabu-dong and Gisan-dong, Goryeong
대표명칭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영문명칭 Kiln Sites in Sabu-dong and Gisan-dong, Goryeong
한자 高靈 沙鳧洞과 箕山洞 窯址
주소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사부리 산16 등
지정번호 사적
지정일 2011년 7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0,977㎡
웹사이트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는 14세기 말부터 15세기까지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등의 도자와 기와를 굽던 곳이다. 사부동 요지 두 군데와 기산동 요지를 하나로 묶어 2011년 7월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여기서 발견된 대접과 접시 대부분은 그릇의 두께가 두껍고 굽은 투박하며, 국화·구름·소용돌이무늬가 있다.

사부동과 기산동 요지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실린 상품 자기소上品 磁器所로, 전국 324개 가마 중에서도 가장 좋은 상품의 자기를 만들기로 이름난 곳 중의 하나이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령인수부**, 고령장흥고***”라고 새겨진 그릇들을 만들었던 곳으로 보인다. 당시 고령지역의 질 좋은 흙과 연료, 도공의 숙련된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우수한 그릇을 많이 만들었던 곳임을 짐작하게 한다.


  • 요지(窯址): 토기, 질그릇, 도자기, 기와, 벽돌 따위를 구워내는 가마가 있던 터
  • 인수부(仁壽府): 조선 초기 관청 이름
  • 장흥고(長興庫): 고려·조선 시대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조달, 관리하던 관청

영문

Kiln Site in Sabu-dong and Gisan-dong, Goryeong

The kiln discovered in the area of Sabu-dong and Gisan-dong produced celadon, buncheon, and white porcelain ware as well as roof tiles between the end of the 14th and the 15th century.

According to the Geography Section of the Annals of King Sejong (1454), these kilns produced porcelain of the highest quality. It is presumed that due to the good quality of the local clay, fuel, and the highly skilled potters, the Goryeong area was producing fine ceramics at a large scale at the time. Among the total of 324 kiln (sites) in the whole country, it was one of the few known for especially good quality porcelain.

Porcelain ware collections such as that of the palace storage facility Jangheunggo, have vessels with the names of government offices and the characters Goryeog inscribed on them. It is presumed that such porcelain vessels were made in these kilns.

Most of the porcelain ware produced at this kiln site is characterized by increased thickness, crudely made feet, and the use of chrysanthemum, cloud, and whirlpool designs.

영문 해설 내용

고령 사부동과 기산동에서 발견된 가마터들은 14세기 말부터 15세기까지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의 도자와 기와를 굽던 곳이다.

1454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이곳의 가마들은 상품의 자기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당시 고령 지역의 질 좋은 흙과 연료, 도공의 숙련된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우수한 그릇을 많이 만들었던 것으로 짐작되며, 전국 324개 가마 중에서도 가장 좋은 상품의 자기를 만들기로 이름난 곳 중의 하나였다. 현재 전해지는 그릇들* 중에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관리하던 ‘장흥고’를 비롯해 관청의 이름과 ‘고령’이 함께 새겨진 그릇들이 있는데, 이러한 그릇들도 이 가마터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발견된 대접과 접시 대부분은 그릇의 두께가 두껍고 굽은 투박하며, 국화·구름·소용돌이무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