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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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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계서원
섬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섬계서원
한자 剡溪書院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445-1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160호
지정일 2007년 12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4동)
웹사이트 섬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원은 조선시대에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뛰어난 학자나 충절로 죽은 사람을 모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섬계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서 삼중신*의 한 사람인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김문기는 조선 세조 때 공조판서를 지냈으나 세조 2년(1456)에 단종 복위 운동에 연관되어 처형되었다. 이후 영조 7년(1731)에 이르러 충절을 인정받아 사후에 관직을 다시 돌려받았고, 영조 33년(1757)에는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받았다. 그리고 조선 후기인 순조 2년(1802)에 지방 사림들이 김문기를 모시기 위하여 섬계서원을 세웠다. 섬계서원을 세울 때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이노춘이 상량문***을 썼다.

섬계서원의 건물은 강당인 경의재를 중심으로 하며, 경의재 동쪽에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세충사와 동별묘가 있다. 세충사는 김문기와 영월군수를 지냈던 그의 아들 김현석을 함께 모신 사당이다. 동별묘는 이른바 영남삼현(嶺南三賢)으로 불리는 선비 장지도, 윤은보, 서즐을 모신 사당이다. 현재의 건물은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으로 모든 건물이 헐렸다가 여러 차례 고쳐 지은 것이다. 1899년에는 경의재, 1961년에는 세충사, 1996년에는 동별묘를 다시 세웠다.

  • 삼중신(三重臣): 조선시대 단종의 폐위 이후에도 목숨을 바쳐 충성을 지킨 민신, 조극관, 김문기 등 세 명의 충신.
  • 시호(諡號): 왕, 재상, 선비 등의 인물이 죽은 후에, 그 공덕을 칭송하기 위하여 임금이 내리던 이름.
  • 상량문(上梁文):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은 건물의 내력을 적어 둔 문서.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