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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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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혜국사
대표명칭 문경 혜국사
한자 聞慶 惠國寺



해설문

국문

혜국사는 문성왕 8년(846)에 신라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에는 법흥사(法興寺)라 하였다. 이 절은 현재 조령산성 안에 있다.

고려 말 홍건적의 난 때는 공민왕이 이곳으로 피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청허(淸虛), 송운(松雲), 기허(騎虛) 3대사(三大師)가 이곳에서 왜란의 위기를 구제할 방책을 세워 나라에 조력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사찰의 이름을 혜국사(惠國寺)라고 바꾸었으며, 명실공히 두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고종 3년(1866)에 화재로 사찰이 불에 타 없어졌으나, 그 뒤 주승(主僧) 최송봉(崔松峰)이 경상도관찰사 이상현(李參鉉)의 도움을 받아 대웅전과 사찰의 일부를 중건하였다. 1926년 봄에는 주지승(住持僧) 고만허(高滿虛)와 김룡사(金龍寺) 승려 정문흠(鄭文欽)의 노력으로 다시 공사를 시작하여 7개월 만에 중건하였다.

현재는 대웅전, 산신각, 관음전, 요사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총 59m²의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중앙의 본존과 협시보살*로 이루어진 목조삼존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09)이 있다. 불상의 배안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보면 수화승(首畫僧) 김문(金文)이 만들어 숙종 10년(1684)에 인근 금학사(金鶴寺, 문경읍 마원리, 현재는 폐사됨)에 안치했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본존은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맺었으며, 오른발을 위로 하여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아미타여래좌상이다. 좌우의 협시보살상도 머리 부분이 불상 높이의 1/3에 달할 정도로 크며 그 형식도 본존불과 유사하다. 이 조각상은 17세기 목조 불상 양식의 보편적인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큰 귀, 왜소한 어깨, 상체에 비해 하체부가 과장된 듯한 무릎, 간결한 옷주름 등에서 독특한 조형적 예술성을 보인다.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총 23m²이다. 내부에는 칠성탱 2점, 산신탱 1점, 독성탱 1점이 봉인되어 있다. 그리고 요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총 132m²의 건물이다.


  • 협시보살: 본존불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보살
  • 하품중생: 구품 정토의 하나. 파계하고 악행을 행한 범부가 죽을 때에 아미타불의 공덕을 듣고 80억겁(億劫) 동안 생사에 윤회할 죄를 덜고 정토의 보배 연못에 태어나 6겁을 지내고 연꽃이 피어 법문을 듣고 발심하는 세계이다.
  • 인: 부처가 자기의 내심(內心)의 깨달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열 손가락으로 만든 갖가지 표상(表象)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