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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서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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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8월 22일 (월) 19:4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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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서계서원
산청 서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서계서원
한자 山淸 西溪書院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지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9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산청 서계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 서원은 지방 교육의 상징적인 장소로,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先賢)들의 제사를 지내며 각 지방 고급 인재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교류를 하던 장소이다.

산청 서계서원은 조선시대 중기 문신이자 학자인 덕계 오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조선 선조 39년(1606)에 세웠으며, 숙종 3년(1677)에 ‘서계’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5년(1868)에 서원훼철령**으로 사라졌다가 1921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 오간, 오장, 박문영 등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서계서원은 앞쪽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모임을 가지던 강당과 생활공간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을 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룬다.

서원의 출입문인 입덕루를 지나면 교육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강당과 학생들이 숙소로 지내던 앞면 2칸 규모의 동재와 서재가 있다. 강당의 오른쪽에는 부속강당인 덕천재와 「오건 덕계문집 목판, 오장 사호집 목판, 오한 수오당문집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위치한다.

강당 뒤로는 오건을 중심으로 오장, 오간, 박문영 등의 위패***를 모신 앞면 3칸 규모의 사당 창덕사가 있다. 창덕사는 앞쪽에 위치한 강당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지형의 높이 차를 이용하여 강당과 사당 공간의 위계와 영역을 구분하였다.


  • 현판(懸板) : 글자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에 다는 나무 판.
  •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 : 고종 1년(1864) ~ 고종 8년(1871)에 걸쳐 서원의 폐단을 막기 위하여 전국에 47개의 서원만 남기고 대부분의 서원을 없앤 일.
  • 위패(位牌) : 단, 묘, 원, 절 등에 모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
  • 서계서원에 모셔진 인물 중 ‘오간’ 수정 필요. 서원연합회에 자료에 따르면 오건, 오한, 오장, 박문영이 배향되어 있다고 함.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수오당 오공과 용호 박공을 모셨다고 했으며, 국문에 언급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의 지정명칭에도 오한 수오당문집이라고 되어 있음.

영문

A Confucian academy, called seowon in Korean, is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at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서계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오건(1521-1574)을 기리기 위해 1606년에 창건되었으며, 1677년에 사액을 받았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1년에 다시 지었으며, 지금은 오건, 오건의 아들인 오장(1565-1616), 오건의 사촌동생인 오한(1546-1589),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박문영(1570-1623)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서계서원은 앞쪽의 강학공간과 뒤쪽의 제향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향공간이 강학공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여 위계를 나타냈다. 강학공간에는 앞쪽에서부터 정문,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강당이 있고, 강당의 오른쪽에는 부속 강당과 장판각이 있다. 장판각에는 오건, 오장, 오한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이 보관되어 있다. 제향공간에는 내삼문과 사당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