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숭정처사 유허비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7월 23일 (토) 17:37 판 (새 문서: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비는 병자호란을 개탄하며 와룡산(臥龍山)의 도연(陶淵) 위에 와룡초당(臥龍草堂)을 짓고 은거했...)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비는 병자호란을 개탄하며 와룡산(臥龍山)의 도연(陶淵) 위에 와룡초당(臥龍草堂)을 짓고 은거했던 표은(瓢隱)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초 이 비는 도연폭포 곁에 있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표은은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상징하는 숭정처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유허비는 화강석으로 된 사면비(四面碑)이며, 전면에는 ‘숭정처사유허(崇禎處士遺墟)’라고 썼다. 비좌대는 직육면체로 윗면에 연화문을 측면에 안상을 새겼다. 비신 4면에 돌아가며 비문을 기록하였다. 용모양의 비머리(螭首)는 윗면을 호형으로 한 육면체이며 구름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다. 현재 이 비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문은 밀암(密菴) 이재(李栽)가 찬(撰)하고 표은의 증손인 성월(聖鉞)이 썼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비석은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이후 와룡산(臥龍山)에서 은거했던 선비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세기에 세워졌다.

김시온은 전쟁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한양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인조(仁祖, 재위 1623~1649)의 항복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며 귀향하였다. 이후 그는 와룡산의 도연(陶淵) 폭포 근처에 초당을 짓고, 스스로를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키는 ‘숭정처사(崇禎處士)’라 칭하면서 벼슬에 나가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비석은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구름 문양을 새겨 장식한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 전면 중앙에 ‘숭정처사유허(崇禎處士遺墟)’라고 새기고, 비석의 네 면을 둘러 비문을 기록했다.

비문은 김시온의 손자 김태중(金泰重, 1749~1711)과 가깝게 교유했던 이재(李栽, 1657~1730)가 숙종 43년(1717)에 지었고, 글씨는 김시온의 증손자 김성월(金聖鉞, 1659~1745)이 썼다.

이 비석은 본래 그가 머물던 도연폭포 곁에 있었는데,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현재 비석의 보호를 위해 지어진 비각 안에 있다.

  • 비석이 세워진 시점 & 비각 건립 시점 명확하지 않음(검색 안되므로 확인 필요함)
  • 비석 우측에 김태중이 조부인 김시온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송정(松亭,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2호)이 있다.
  • 김시온의 호 도연은 중국의 시인으로 은거하는 삶을 살았던 도연명(陶淵明)의 이름을 따서 지은 호이다. 그는 자신이 은거하던 곳의 지형이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어 스스로 ‘표은(瓢隱)’이라는 호를 짓기도 하였다. / 영조 10년(1734)에 조정에서 김시온의 절의를 기리며 벼슬을 내렸다.
  • 김시온의 장남 김방렬의 아들이 김태중이다. 김성탁은 김태중의 장남이다. / 이재는 갈암 이현일의 아들이며, 김태중은 이현일에게서 수학했다.

1차 수정

유허비는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의 삶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을 말한다. 숭정처사 유허비는 안동 출신의 학자 김시온(金是榲, 1598~1669)을 기리기 위해 18세기에 세워졌다. 원래 김시온이 머물던 와룡산 도연폭포 옆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김시온은 의성김씨 중 안동에 처음으로 정착한 김만근(金萬謹, 1446~1550)의 5대손이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와룡산에 초당을 짓고 은거하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그는 생전에 “나의 묘에는 ‘숭정처사’라고 쓰라”는 뜻을 남겼다. ‘숭정’은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이고, ‘처사’는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를 가리키는 말로, ‘숭정처사’란 명나라에 대한 절의를 지키는 선비를 나타낸다.

유허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구름 문양을 새긴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석 앞면 가운데에 ‘숭정처사유허’라고 새기고, 네 면에 비문을 새겼다. 비문은 김시온의 손자 김태중(金泰重, 1749~1711)과 가깝게 교유했던 이재(李栽, 1657~1730)가 숙종 43년(1717)에 지었고, 글씨는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5대손인 김성월(金聖鉞, 1659~1745)이 썼다.

비각 오른쪽에는 김태중이 김시온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