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의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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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림지 義林池
Uirimji Reservoir
Goto.png 종합안내판: 제천 의림지와 제림



해설문

국문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현재까지 관개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유일한 저수지이다.

의림지의 정확한 축조시기를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 축조설이 우세하다.

의림지의 제원은 둘레 1.8km, 수심 8~13m, 만수면적 15.3ha, 최대저수량 50만t이며, 관개면적 196ha(만수면적의 13배)이다. 의림지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제천현감을 지낸 박의림의 이름을 따서 의림지로 명하였다고 전해진다.

의림지는 산과 산 사이 지반이 단단한 계곡에 저수지를 만든 산곡형 저수지이다. 제방은 각기 성질이 다른 흙을 시루떡처럼 쌓는 판축법을 기반으로, 흙 사이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넣는 부엽공법을 활용하는 등 당시 최신 기술로 축조하였다.

의림지의 개보축 현황은 다음과 같다.

  • 고려시대 박의림이 무너진 의림지 개보축을 시행하였다고 전해짐
  • 15세기 충청감사 정인지가 의림지 보축 감사
  • 15세기 수령들이 고기잡이를 많이 하여 터진 제방을 홍윤성이 보축
  • 17세기 제천현감 홍중우가 개보축
  • 1914~1917년 의림지 시설 보수
  • 1972년 대홍수 이후 붕괴된 서쪽 제방 보수

저수지 주변에는 두 개의 정자가 있는데 그 중 영호정은 조선시대 순조7년(1807)에 이집경이 세웠으며 정미의병 당시 의병대장 이강년이 제천 천남전투에서 승리한 후 1907년 부하 장수들과 정치를 논한 장소이다.

아름답고 자랑스런 의림지는 제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로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다.

영문

Uirimji Reservoir

영문 해설 내용

의림지는 제천을 대표하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로, 현재까지 관개시설로 활용되고 있는 유일한 저수지이다. 의림지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에 의림지를 보수한 제천현감 박의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고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림지는 둘레 1.8km, 수심 8-13m, 만수면적 15.3ha, 최대저수량 50만 톤이며, 관개면적은 196ha로 만수면적의 약 13배에 달한다.

의림지는 지반이 단단한 계곡에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제방은 각기 성질이 다른 흙을 쌓아 만들었고, 흙 사이에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번갈아 번갈아 쌓아 올려서 안정성을 확보하였다.

의림지의 개보축 연혁은 다음과 같다.

  • 고려시대 박의림이 무너진 제방을 개보축을 하였다고 전해짐
  • 15세기 충청감사 정인지가 의림지 보축 감사
  • 15세기 수령들이 고기잡이를 많이 하여 터진 제방을 홍윤성이 보축
  • 17세기 제천현감 홍중우가 개보축
  • 1914~1917년 의림지 시설 보수
  • 1972년 대홍수 이후 붕괴된 서쪽 제방 보수

저수지 주변에는 두 개의 정자가 있다. 그 중 영호정은 1807년에 이집경이 세웠다. 1907년 일제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조선의 군대를 해산시키자, 이에 저항하여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당시 의병대장인 이강년이 제천전투에서 참전하였다가 승리한 후 이 정자에서 부하 장수들과 정치를 논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