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원천정
거창 원천정 Woncheonjeong Pavilion, Geo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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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거창 원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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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Woncheonjeong Pavilion, Geochang |
한자 | 居昌 原泉亭 |
주소 |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장기리 778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1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3동 |
웹사이트 | 거창 원천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원천정은 전팔고가 1587년(선조 20)에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지었으며, 임진왜란(1592) 때는 거창 의병군의 전략회의 장소로 활용된 유서 깊은 곳이다.
전팔고(全八顧, 1540~1612)는 죽산전씨(竹山全氏)로 호가 원천(原泉)이며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덕계 오건(吳健, 1521~1574)에게 학문을 배웠다. 한강 정구(鄭逑, 1543~1620), 동강 김우옹(金宇顒, 1540~1603)과 가까이 지냈다.
임진왜란때 거창의 중심인물인 김면(金沔, 1541~1593), 문위(文緯,1554~1631), 윤경남(尹景男, 1556~1614)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이끌었으며 문위(文緯)를 서애 유성룡에게 관리로 기용토록 추천하였다.
명나라 군대가 가조에 머물 때 도운 공으로, 명 황제가 첨지(僉知)를, 선조가 대사헌(大司憲)을 내렸으나 사양하였다.
대문채, 본채와 뒷편에 복원된 사당인 용천서원(龍泉書院)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훼손된 것을 1684년 후손들이 크게 고쳤고 이후에도 여러 번 고쳤다.
마루에는 원천정 건립과 수리에 관한 기문과 상량문이 걸려 있고, 당시 이름 난 지식인인 사호 오장(吳長) 동계 정온(鄭蘊), 용주 조경(趙絅)의 시가 걸려 있고 뜰에는 이휘녕(李彙寧)이 지은 신도비가 있다.
영문
Woncheonjeong Pavilion, Geochang
영문 해설 내용
원천정은 학자 전팔고(1540-1612, 호: 원천)가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1587년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거창 지역 의병의 전략회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다.
전팔고는 거창 출신으로 당대의 대학자인 조식(1501-1572), 오건(1521-1574)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정구(1543-1620), 김우옹(1540-1603) 등과 교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거창 지역의 중심인물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조선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명나라 군대가 지금의 거창 지역에 머무를 때 군량이 부족하여 고통을 겪자, 전팔고가 군량미를 제공하여 위기를 면하게 하였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명나라 황제와 선조(재위 1567-1608)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경내에는 대문채와 원천정이 있고, 뒷편에는 전팔고를 비롯한 거창 출신의 인사 5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원천정은 훼손되었던 것을 1684년에 후손들이 크게 고쳐 지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왼쪽의 대청과 오른쪽의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청에는 원천정의 건립 및 수리에 대한 기록과 이름난 학자들의 시가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 원천정 앞뜰에는 전팔고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