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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씨 열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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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0월 16일 (토) 05:4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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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정씨 열녀비
대표명칭 고려 정씨 열녀비
지정(등록) 종목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형유산



해설문

국문

고려 정씨 열녀비는 고려 후기 한남리에 살던 정씨(鄭氏)의 정절을 높이 사 세워진 비석으로, 정씨는 제주 열녀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정려되었다.

원 간섭기에 목호(牧胡) 석나리보개(석방리보개)의 아내인 열녀 정씨는 1374년(공민왕 23년) 목호의 난 때 최영 장군이 이끌던 고려군에 의해 남편이 죽자 그를 따라 자결하였는데, 이후 그 정절을 높이 사 1481년 이전에 정려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석 후면에 1834년(순조 34년) 한응호(韓應浩) 목사가 비석을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볼 때, 그 이전부터 비석은 이미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 1428년에 정려가 내려졌다는 기록이 있음.

  • 향토유산 지정공고와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서는 정씨가 자결한 것이 아니고, 끝까지 수절한 것으로 언급함.
    • 제주특별자치도 공고 제2019-3024호, 《「상모리 석상」 등 3건 제주특별자치도 향토유산 지정 공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2019-11-27

https://sido.jeju.go.kr/citynet/jsp/cmm/attach/download.jsp?mode=download&fid=%23aadbabe2ae45bb3c06ec540abab66eea4bfe4c4a1a9597f8afac638d659f3163&index=0&other=%23f4b42464d48b2be3d3a8f834d583531e21092d324a7e3e74c661d416cb8d8bed28e5269c4dc51117bd75fa5ff8a1f5ba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고려 말 한남리에 살던 정씨 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정씨는 1428년에 정려를 받았으며, 제주 지역 열녀 가운데 국가에서 정려된 최초의 인물이다. 뒷면에는 1834년에 비석을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 후반부터 약 100여년 간 제주 지역에는 상당수의 몽골인들이 들어와 정착하였으며, 이들은 대규모의 말 목장을 운영하였다. 정씨의 남편도 이 목장의 몽골인이었다. 1374년 제주 몽골인들이 고려 조정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고려군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씨의 남편이 죽었다. 정씨는 젊고 아름다웠으나, 끝까지 재혼하지 않고 수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