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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존양재(문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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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9월 4일 (토) 19:41 판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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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존양재) 東齋(存養齋)
Goto.png 종합안내판: 문헌서원



해설문

국문

동재는 서원 강당의 동쪽 건물로 원생들이 수학하며 생활하던 공간이다.

동재의 현판인 ‘존양재(存養齋)’는 『맹자』와 『중용』에 나오는 ‘존양성찰(存養省察)’에서 유래한 말로 “마음의 본성을 지키며 자신의 잘못을 살피고 반성한다”라는 뜻이다.

동재인 존양재는 1611년(광해 3) 문헌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던 1612년에 세웠다. ‘존양재’란 현판은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고 한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으나 1969년에 현재의 묘역 근처로 옮겨 복원하고, 다시 2007년~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재도 새롭게 건축하였다.


  • 사액: 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 건립 연도 확인 필요. 1611? 1612?
    • 문헌서원 홈페이지 내용에 따르면 1612년 → 1610년(광해군 2)에 관찰사 정엽(鄭曄)과 정언 이경탁(李慶倬: 명곡 이산보의 아들)등이 이를 애석하게 여기고 이건을 계획하여 이듬해에 동재, 다음해에 강당을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진수당 앞에 있는 두 건물은 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동재는 상급생들이, 서재는 하급생들이 사용하였다.

문헌서원은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69년에 다시 지었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동재와 서재 건물도 새로 지었다.

동재의 이름은 존양재는 『맹자』와 『중용』에서 유래한 말로 “마음의 본성을 지키며 자신의 잘못을 살피고 반성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송준길(1606-1672)이 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