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사천 연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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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곳 연천(鳶川) 마을의 이름은 마을 뒷산이 솔개가 날아와 앉은 형상을 닮았고, 마을 앞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마을 앞에 있는 산은 험준한 돌산으로 강한 산세(山勢)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풍수지리적으로 강한 산세를 완화하기 위하여 마을 앞에 이 숲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그런 점에세 이 숲은 풍수지리적으로 약한 땅 기운을 돕기 위해 조성한 비보(裨補)*적 성격을 띤 수호림(守護林)인 셈이다.

숲에는 느티나무 28그루, 팽나무 21그루, 말채나무 5그루, 이팝나무 3그루 등 모두 57그루의 큰키나무[喬木]가 심어져 있다. 이들 나무는 방패처럼 앞산을 가리고 있으며, 빼어난 풍경을 제공하는 풍치림(風致林), 마을을 거센 바람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는 정자림(亭子林)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수령이 약 500년에 이른 나무도 있다.


  • 비보(裨補) : 풍수지리상에서 나쁜 기운이 깃든 산천 등에 탑,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도와 보충함.

수정 국문

초고

연천마을 입구에 자리한 이 숲은 풍수리지적으로 땅의 기운을 보완하고 마을 앞에 있는 돌산의 험하고 강한 기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이곳에는 수령이 약 500년에 이른 나무도 있어 약 300년 전에 조성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숲에는 느티나무 28그루, 팽나무 21그루, 말채나무 5그루, 이팝나무 3그루 등 모두 57그루의 나무가 심겨져 있다.

이 숲은 마을로 불어오는 센 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의 공간과 빼어난 풍경을 제공하는 등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

  • 연천 마을의 이름은 마을 뒷산이 솔개가 날아와 앉은 형상을 닮았고, 마을 앞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1차 수정

연천마을 입구에 자리한 이 숲은 풍수지리상 마을 앞 돌산의 험하고 강한 기운을 완화 시키고, 마을이 있는 곳의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을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 농토와 마을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의 공간과 빼어난 풍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 등 모두 57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령이 500년 이상 된 나무도 있다.

마을의 이름이자 숲의 이름인 ‘연천’은 ‘솔개와 냇물’이라는 의미로, 마을 뒷산이 솔개가 앉은 형상을 닮았고 마을 앞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의 내용에 따라 57그루로 썼으나, 실제 현장의 분포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음.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기존 문안에 비해 쉽고 간결하게 문안 수정이 잘 이루어진 듯합니다.
    • 숲이 조성된 시기와 이런 종류의 숲이 지닌 생태적 가치(또는 기념물 지정 근거)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의견 없음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연천마을 입구에 자리한 이 숲은 풍수지리상 마을 앞 돌산의 험하고 강한 기운을 완화 시키고, 마을이 있는 곳의 약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마을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 농토와 마을을 보호하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넉넉한 휴식의 공간과 빼어난 풍경을 제공하기도 한다. 느티나무, 팽나무, 말채나무, 이팝나무 등 모두 57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으며, 수령이 500년 이상 된 나무도 있다.

마을의 이름이자 숲의 이름인 ‘연천’은 ‘솔개와 냇물’이라는 의미로, 마을 뒷산이 솔개가 앉은 형상을 닮았고 마을 앞에 하천이 흐르고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