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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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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릉
Uireung Royal Tomb, Seoul
서울 의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울 의릉
영문명칭 Uireung Royal Tomb, Seoul
한자 서울 懿陵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석관동)
지정번호 사적 제204호
지정일 1970년 5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조선시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434,386㎡
웹사이트 서울 의릉,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의릉은 조선 20대 왕 경종(景宗 : 1688~1724, 재위 : 1720~1724)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宣懿王后 魚氏 : 1705~1730)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肅宗)과 옥산부대빈 장씨(玉山府大嬪 張氏, 희빈 장씨)의 아들로, 1690년(숙종 16)에 왕세자가 되었다. 1717년(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았으며(대리청정代理聽政), 1720년 왕위에 올랐다. 경종의 재위 기간은 노론과 소론의 정권 다툼이 극심한 당쟁의 절정기였다.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영조)을 왕세제(王世弟)로 책봉하고 재위한 지 4년(1724)만에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선의왕후는 어유구(魚有龜)의 딸로, 1718년(숙종 44)에 왕세자빈이 되었다가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1730년(영조 6)에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의릉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독특한 형태로 같은 능역에 위쪽은 왕릉을, 아래쪽은 왕비릉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조성한 데에는 능역의 폭이 좁아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적인 이유가 있다. 능침은 병풍석(屛風石)을 생략하고 난간석(欄干石)만 둘러져 있으며, 경종의 능에만 곡장(曲墻)이 둘러져 있다.

국문 수정안

의릉은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景宗: 1688~1724, 1720~1724 재위)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 1705~1730)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肅宗)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희빈장씨(禧嬪張氏)이다. 세 살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되었고, 숙종의 말년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국정을 살폈으며, 33세 되던 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몸이 매우 약하여, 이듬해에 곧바로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의 영조(英祖))을 후계자로 정하였고, 즉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인 희빈장씨가 사약을 받았고, 노론과 소론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있었던 비운의 왕이기도 하다.

선의왕후는 문신 어유구(魚有龜)의 딸이다. 숙종 44년(1718) 경종의 첫 번째 부인인 심씨(후의 단의왕후(端懿王后))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뒤 왕비가 되었고, 경종이 죽고 6년 후 2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의릉은 왕과 왕비의 능을 한 언덕에 위아래로 배치한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태이다. 경종의 능이 위에 있고 선의왕후의 능이 아래에 있다. 왕과 왕비의 능을 같은 언덕에 조성할 때는 옆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릉의 경우는 능의 위치한 구역의 폭이 좁기 때문에, 두 능을 위아래로 두어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의릉은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1688-1724, 재위 1720-1724)과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1705-1730)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재위 1674-1720)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숙종의 후궁인 희빈장씨(1659-1701)이다. 세 살 어린 나이에 왕세자가 되었고, 숙종의 말년에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국정을 살폈으며, 1720년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몸이 매우 약하여, 이듬해에 곧바로 이복동생인 연잉군(후의 영조(1724-1776))을 후계자로 정하였고, 즉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경종의 생애 동안 조정에서는 격심한 정쟁이 끊임없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어머니인 희빈장씨가 사약을 받기도 하였다.

선의왕후는 문신 어유구(1675-1740)의 딸이다. 1718년 경종이 세자이던 시절, 첫 번째 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어씨가 세자빈에 책봉되었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뒤 왕비가 되었고, 경종이 죽고 6년 후 세상을 떠났다.

의릉은 두 개의 봉분을 한 언덕에 위아래로 배치한 형태로, 경종의 능이 위에 있고 선의왕후의 능이 아래에 있다. 조선시대의 왕릉에서 왕과 왕비의 능을 같은 언덕에 조성할 때는 옆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릉의 경우는 능의 위치한 구역의 폭이 좁기 때문에, 두 능을 위아래로 두어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