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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송씨 쌍충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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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7월 17일 (토) 01: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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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송씨 쌍충 정려
고흥 송씨 쌍충 정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흥 송씨 쌍충 정려
한자 高興 宋氏 雙忠 旌閭
주소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륜마서길 49-6
지정번호 전라남도 기념물 제110호
지정일 1987년 6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고흥 송씨 쌍충 정려,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흥 송씨 쌍충 정려는 송대립(宋大立, 1550~1597)과 송심(宋諶, 1590~1637) 부자를 기리기 위해 인조 22년(1644)에 내려진 정려이다. 조선시대에는 충신, 효자, 열녀 등에 대해 국가에서 정려를 내려 표창하였다. 쌍충 정려란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충신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송대립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의 휘하에서 동생인 송희립(宋希立, 1553~1623)과 함께 활약했으며,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흥양(興陽, 고흥의 옛 지명)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심은 병자호란 당시 북병사 이항(李沆, ?~1637) 등의 휘하에서 남한산성 구원에 참여하였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자 자신이 거느리던 군사를 거느리고 철수하는 청나라 군대를 추격하였으며, 함경도 안변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이후 부자의 충절이 인정되어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졌으며, 정려 현판을 보호하기 위해 숙종 30년(1704) 정려각이 세워졌다. 이후 정려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6년에 정비된 것이다. 정려각 안에는 왼쪽에 송대립의 정려 현판이, 오른쪽에 송심의 정려 현판이 걸려 있고, 이외에도 두 사람의 정려 사실이나 건물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현판 5매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2개의 정려는 송대립(1550-1597)과 송심(1590-1637) 부자를 기리기 위해 1644년에 내려졌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두 정려를 모신 정려각은 1704년에 세워졌다. 이후 정려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고, 지금의 건물은 1996년에 보수된 것이다. 정려각 안에는 왼쪽에 송대립의 정려가, 오른쪽에 송심의 정려가 걸려 있다. 두 정려는 ‘쌍충 정려’라고 불리는데, 한 집안에서 두 명의 충신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 외에도 두 사람의 정려 사실이나 건물의 중수 사실을 기록한 현판 5매가 있다.

송대립은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1545-1598)의 휘하에서 동생인 송희립(1553-1623)과 함께 활약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향인 흥양(지금의 고흥 지역)에서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송심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구원에 참여하였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강화가 성립되고 청나라 군대가 철수하기 시작하자, 자신이 거느리던 군사를 이끌고 청나라 군대를 추격하였으며, 함경도 안변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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