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암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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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24일 (월) 18:4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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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암초당
대표명칭 두암초당
한자 斗巖草堂
지정(등록) 종목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10호



해설문

국문

두암초당은 부모를 여의고 시묘살이를 했던 호암 변성온(壺巖 卞成溫, 1530~1614)과 인천 변성진(仁川 卞成振, 1549~1623) 형제의 지극한 효성을 기억하려고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초당 가까이에 부모 묘소가 있다. 변성온은 하서 김인후의 제자로 퇴계 이황과도 교유한 성리학자이다.

초당은 전좌암 또는 두락암*(斗絡巖)이라 불리는 바위 밑을 조금 파고 그 안에 구조물을 끼워서 지은 보기 드문 바위굴 누정이다. 창건 이후 훼손되었으나 5대손인 변동빈이 1815년에 중건한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초당에는 이재 황윤석, 노사 기정진 등 이름난 인물들의 시, 현판, 중건기 등이 남아 있다.

건물 지붕은 옆에서 볼 때 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평면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칸이다. 가운데 작은 온돌방을 들이고 3면에 마루를 깔아 병바위 등 주변의 수려한 풍광을 즐기도록 하였다. 이곳은 김소희 명창이 득음하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 두락암: 곡물의 양을 재는 도구인 말(斗)를 엎어놓은 형태의 바위

영문

Duamchodang Pavilion

Duamchodang, located on the cliff face of Duragam Rock, is a pavilion built by the descendants of the brothers Byeon Seong-on (1530-1614) and Byeon Seong-jin (1549-1623) in their honor. It is unknown when it was first built. Records state it was reconstructed in 1815 by Byeon Dong-bin, the 5th-generation descendant of the brothers, but it had fallen into disrepair and was replaced with the current building in 1954.

Byeon Seong-on was a Confucian scholar who was taught by the renowned scholar Kim In-hu (1510-1560) and was friends with Yi Hwang (1501-1570), one of the most famous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Byeon Seong-jin was a student of both Kim In-hu and Yi Hwang. Known for his scholarship, he was bestowed with a government post, but he did not pursue an official career and instead lived in retirement in his hometown. The two brothers were known for their filial piety, and it is said that after the death of their parents, they mourned for them at their parents’ tombs during the required mourning period.

The pavilion was constructed in an unusual manner, as it is partially situated inside a niche that was dug into the side of the cliff. It consists of a small underfloor-heated room in the center with a wooden-floored porch on each side. The front of the building has no walls, and the windows of the room can be opened so that the beautiful scenery can be enjoyed. In the pavilion, there are several plaques bearing poems written by renowned scholars and calligraphers who had visited this place and records of renovations.

영문 해설 내용

두암초당은 변성온(1530-1614)과 변성진(1549-1623) 형제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는 알 수 없고, 형제의 5대손인 변동빈이 1815년에 중건한 건물이 오랜 세월에 유실되어, 1954년 지금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

변성온은 뛰어난 학자였던 김인후(1510-1560)의 제자이며 이황(1501-1570)과도 교유한 성리학자이다. 변성진은 김인후와 이황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아 관직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고 고향에서 은거하였다. 두 형제는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의 묘소에서 시묘살이를 했다고 한다.

초당은 바위 밑을 조금 파고 그 안에 건물을 끼워서 지은 독특한 구조이다. 가운데에 작은 온돌방을 들이고 양옆에 마루를 깔았다. 앞면에는 벽이 없고, 온돌방의 창문을 들어올리면 주변의 수려한 자연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초당 안에는 이름난 학자와 서화가들이 이곳을 방문하여 남긴 시와 중건기 등이 적힌 현판들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