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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노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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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9univ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16일 (일) 23:21 판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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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노산성
평창 노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평창노산성
한자 平昌魯山城
주소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중앙로 158-8, 및 중리 산10 일원 (하리)
지정(등록) 종목 강원도 기념물 제80호
지정(등록)일 2003년 1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관리자 평창군
수량/면적 1곽(51,357㎡)
웹사이트 평창 노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곳은 조선조(朝鮮朝) 중기 흉폭한 왜적(倭賊)의 침입이 있었을 때 이 고장을 지키려는 조상들이 피 흘려 싸운 곳이다. 이 곳에 처음 성을 쌓은 것은 조선 중기라 하나 성을 쌓은 모양으로 보아 그보다 더 오래인 고려시대 이전에 이 고장을 지키려는 선민들이 쌓은 산성이라고 보는 편이 옳은 것 같다. 특히 이 곳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평창군수 권두문(權斗文)공이 이 산성을 수축하고 전란에 대비한 바 있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많은 관민이 함께 피난했던 응암굴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400여미터의 작은 산성이나 천험(天險)을 이용하여 수축한 산성이다. 이 고장을 지켜온 호국의 유적지를 길이 보존하고자 표석을 세워 옛 일을 후세에 전한다.

수정 국문

초고

평창 노산성(平昌魯山城)은 노성산(魯城山)에 있는 산성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와서는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초에 김광복(金光福, 1529~?)이 일시적으로 수리하여 사용하였다.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에는 군수인 권두문(權斗文, 1543~1617) 등이 백성들을 거느리고 왜군과 이곳에서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다.

노산성은 3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북쪽은 절벽이거나 매우 가파른 곳이어서 천험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성의 둘레는 517m이며, 성벽은 북쪽의 절벽부분을 제외한 곳에만 축조되었는데 현재 대부분 붕괴되어 있다. 성내의 시설로는 산 정상 부근에 깊이 약 2m의 우물터 한 곳이 있다. 현재 산봉우리에는 1982년에 건립한 “임진노성 전적비(壬辰魯城 戰績碑)”가 세워져 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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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