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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수원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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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수원사지 (종합안내판)
공주 수원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공주 수원사지 (종합안내판)
한자 公州 水源寺址
주소 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 111외 2필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36호
지정(등록)일 1982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시대 백제
수량/면적 7,219㎡
웹사이트 공주 수원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곳은 백제 시대에 세워진 수원사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웅천주(熊川州)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보아 이미 백제시대에 수원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변에 석탑의 일부분이 남아 있으며, 1967년 발굴조사 때에 곱돌로 만든 작은 탑과 청동으로 만든 청동방울 및 탑의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1991년 2차 발굴조사 결과 금당지와 4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백제 시대에 세워진 수원사(水源寺)의 옛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수원사와 관련하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는 기록이 있다. 신라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때 흥륜사(興輪寺)에 있던 승려 진자(眞慈)가 꿈에서 만난 승려로부터 웅천주(熊川州)에 있는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찾아가 만났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는 수원사가 이미 창건되어 경영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의 발굴조사는 세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조사는 1967년 국립공주박물관에 의해 개괄적인 조사가 이루어졌고, 2차·3차 조사는 1989년과 1991년 공주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시굴·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절터 중앙에는 석탑지(石塔址)가 있으며, 그 북쪽으로 5기의 건물지와 1기의 추정 건물지가 밀집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이 남북으로 배치되고 남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남고북저의 지형에 남쪽이 가로막혀 있고 대신 북쪽으로 시야가 트여 있으며 동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동종(銅鐘)과 석불좌상 조각, 나한상의 머리 부분, 곱돌로 만든 소탑, 기와류 및 토기·청자·백자의 조각 등이 있는데, 대체로 통일신라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것들로서 백제 때의 유물로 추정될 만한 것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이곳은 백제의 사찰 가운데 그 명칭 및 관련 일화가 기록되어 전하는 몇 안되는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이는 웅진도읍기 백제의 불교문화와 미륵신앙과의 관계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공주_수원사지 Place 공주_수원사지
수원사 Object 수원사(水源寺)
삼국유사 Record 삼국유사(三國遺事)
진자 Actor 진자(眞慈) 생몰년 미상
미륵선화 Concept 미륵선화(彌勒仙花)
미륵신앙 Concept 미륵신앙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공주_수원사지 수원사 isSiteOf
수원사 삼국유사 documents
수원사 진자 isRelatedTo
진자 미륵선화 isRelatedTo
진자 미륵신앙 isRelatedTo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