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육영재(무주)

HeritageWiki
Kurt1166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18일 (일) 23:23 판 (영문)

이동: 둘러보기, 검색


육영재
Yugyeongjae Lecture Hall
대표명칭 육영재
영문명칭 Yugyeongjae Lecture Hall
한자 育英齋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원촌길 35 (현내리)
지정번호 무주군 향토문화유산 제5호



해설문

국문

육영재는 현종 15년(1849) 6월에 흥양 이씨 문중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건립한 교육 기관이다. 이곳에서 공부한 자녀들 중에는 후에 훌륭한 선비가 되어 국가의 각 기관에 진출한 인물들도 많았다. 이곳은 흥양 이씨 가문의 자녀들을 위해 학문을 가르치고 숙식을 함께하던 교육 기관이었던 덕분에 조선 말기 서원 철폐 정책 아래서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22년 5월 17일에는 이곳에 무창사립보통학교를 세워 연령의 구분 없이 80여 명의 학생들이 신학문을 익히도록 하였다. 제대로 된 학교 건물을 마련하기까지 5년여 동안 수업을 진행했던 이곳은 후일 신학문의 기초가 되었다. 이후 무창사립보통학교는 현재의 무풍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육영재는 애국지사인 김구 선생께서 독립 자금 모금과 항일 의병 활동을 위해 며칠간 머물렀던 곳이다. 그 영향으로 육영재는 이 고장 항일 의병들에게 큰 힘을 주었다.

영문

Yugyeongjae Lecture Hall

This lecture hall was built in 1849 by the Heungyang Yi clan to educate their children. The name of the hall, Yugyeongjae, can be translated as “the place where talents are cultivate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hall was used as an educational facility for the youth of the Muju area. In the year 1922, Muchang Private General/Common School was founded here. Before the new school building was complete, for five years, lessons were taught in this hall. Over 80 students of different age studied here at the time**. This school became the predecessor of the present-day’s Muchang Elementary School.

Kim Gu (1876-1949), a prominent lead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stayed at this hall when he visited Muju. During his stay here, Kim Gu collected money for the independence fund and led the civilian army movement. This is why the hall became the ideological center of the anti-Japanese resistance in the area.

  • Why is it Yugyeongjae but not Yukyeongjae?
    • I skipped the 신학문 part because it sounds a bit vague.

영문 해설 내용

육영재는 흥양이씨 문중에서 자녀들을 교육하기 위해 1849년에 세운 교육 기관이다. '육영재'는 '영재를 가르쳐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무주 지역 청소년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활용되었고, 1922년에는 이곳에 무창사립보통학교가 세워졌다. 새로운 학교 건물을 마련하기까지 5년여 동안 육영재에서 수업을 진행했으며, 연령의 구분 없이 80여 명의 학생들이 신학문을 배웠다. 이후 무창사립보통학교는 현재의 무풍초등학교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곳은 독립운동가였던 김구(1876-1949)가 무주를 방문하였을 때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김구는 이곳에서 독립 자금을 모금하고 항일 의병 활동을 이끌었으며, 그 영향으로 육영재는 이 고장 항일 의병들의 정신적 중심지가 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