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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열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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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17일 (토) 00:53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 |사진출처= |대표명칭=창녕 성씨 열녀각 |영문명칭= |한자=昌寧 成氏 烈女閣 |주소= |소장처= |지정번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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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성씨 열녀각
대표명칭 창녕 성씨 열녀각
한자 昌寧 成氏 烈女閣



해설문

국문

창녀 성씨 열녀각은 창녕 성씨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24년(1887)에 나라에서 세운 누각이다.

창녕 성씨는 문화 류씨(文化柳氏) 문중의 류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어느 날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을 지경이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아무도 달려들지 못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부인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니 호랑이가 그 용기에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났다. 이후 부인은 남편의 시체를 수습하고 돌아왔다.

당시 임신 중이던 부인은 배를 가리키며 “내가 만일 남자아이를 낳으면 류씨 가문의 대를 잇게 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이다.”라고 맹세하였다. 그 후 부인은 여자아이를 낳게 되자 아이를 낳은 지 7일째 되는 날 밤 틈을 타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이튿날 뇌성벽력이 일더니 물 가운데에서 홀연히 고운 빛깔의 무지개가 일어나 마을 앞을 가로질러 뻗치었다. 부인의 시신을 물에서 건져 내고 보니 살았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남편을 섬기는 부인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에 나라에서는 고종 28년(1891)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열녀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