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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해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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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진해 웅천읍성
창원 진해 웅천읍성, 창원시문화관광, 창원시청.
대표명칭 창원 진해 웅천읍성
한자 昌原 鎭海 熊川邑城
주소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519-6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
지정일 1974년 12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창원 진해 웅천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웅천읍성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세종 16년(1434)에 남해안지역에 출몰하는 왜구와 인접한 제포왜관의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축조된 연해읍성이다. 읍성은 지방의 주요거점에 군사적인 기능과 행정적인 기능이 복합되어 축조된 성곽으로 웅천읍성은 남해안지역에 축조된 연해읍성이다. 이 웅천읍성은 왜구의 침입과 조선전기에 개항한 삼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왜인거류지가 조성되어 있는 제포와는 불과 1km 남짓 떨어져 있으며, 삼포왜란 당시 왜인들에게 함락되어 동문이 소실되기도 했다. 이후 임진왜란시 웅천왜성의 자성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종결된 이후에도 조선군의 대일본방어의 최일선 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곽이라고 할 수 있다. 웅천읍성은 2001년도부터 2008년도까지 4차례에 직간접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동벽, 남벽 체성부, 동문지, 옹성, 동북, 동남 치성, 북, 동, 남쪽의 해자가 확인되었다. 발굴조사 결과, 웅천읍성은 1434년 세종 16년에 둘레 3400척, 높이 15척으로 초축된 이래 문종과 단종조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의 수개축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평면형태의 경우 정방형의 읍성에서 장방형의 읍성으로 증개축 되었다. 체성부는 세종조 축성신도(築城新圖)가 반강된 전후의 축조양식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해자는 초축 해자 및 증축 해자가 확인되고 있고 또한 해자 내 도개교 및 목익(적이 해자를 넘어오지 못하도록 바닥에 박아 놓은 나무말뚝)이 확인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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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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