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2월 23일 (화) 13:28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신라태대각간순충장열흥무대왕김유신신도비.jpg |사진출처=작성자 강시일, [https://www.idaegu.com/newsView/idg2019...)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작성자 강시일, 5인의 왕 곁에 ‘불세출의 영웅’ 걸었던 길 모두 역사의 흔적, 대구일보 2019년 7월 15일자 기사.
대표명칭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한자 新羅 太大角干 純忠壯㤠 興武大王 金庾信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선도동 산217



해설문

국문

이 비석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595~673)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후손으로 젊어서는 화랑으로서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며 명산대천을 찾아 수련하며 기상을 키웠다. 밖으로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지켰으며, 안으로는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을 진압하는 등 나라를 안정시켰다. 진골출신인 김춘추(金春秋)를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으로 옹립하였으며, 신라군 총수로서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일통삼한(一統三韓)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고구려를 통합한 이후 태대각간에 봉하여졌으며, 문무왕 13년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금산원(金山原)에 묻혔다. 흥덕왕 10년(835)에 공적을 기려 흥무대왕으로 추봉하였으며, 조선 명종 18년(1563)에 서악서원(西岳書院)에 제향되었다.

김유신의 기공비(紀功碑)는 국학의 박사(博士)인 설인선(薛因宣)이 비문을 지었다고 하지만 전하지 않으며, 현재의 비석과 비각은 1966년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1933년에 정인보가 지었으며, 이를 이세호가 1956년에 쓰고 후손인 김형배가 새겼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