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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촌 두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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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촌 두암고택
우금촌 두암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우금촌 두암고택
한자 友琴村 斗巖古宅
주소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304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
지정(등록)일 1975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3동
웹사이트 우금촌 두암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우금촌은 우금 마을, 두암은 조선 시대 학자인 김우익의 호, 고택은 옛날에 지은 오래된 집을 말한다. 두암 고택은 살림집에서 주가 되는 집채인 몸채, 조상의 위패*를 모셔 놓은 건물인 사당, 바깥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건물인 사랑채로 이루어졌다. 몸채는 김우익이 선조 23년(1590)에 살림을 차려 나가면서 지은 집이다. 사당과 사랑채는 후대에 지었는데, 사랑채는 김우익의 손자인 김종호를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우고 김종호의 호를 따서 이름을 함집당(咸集堂)이라 하였다.

두암 고택은 넓은 네모꼴의 땅에 지었는데, 땅의 가장자리를 따라 흙과 돌로 쌓은 담장을 두르고 앞쪽에 솟을삼문*을 두었다. 솟을삼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서면 넓은 바깥마당이 나오고 중앙에 ㅁ자 모양의 몸채, 오른쪽에 김우익의 위패*를 모신 사당, 왼쪽에 함집당이 위치한다.

몸채 가운데에는 안마당이 있고 안마당 뒤쪽 중앙에 큰 마루인 대청,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화장실과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오른쪽 온돌방 앞에는 부엌, 온돌방, 왼쪽 온돌방 앞에는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인 중문, 물건을 넣어 두는 고방, 온돌방을 두었다. 안마당 앞쪽에는 중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방, 왼쪽에 구들이 없는 마루방을 왼쪽으로 조금 튀어나오도록 만들었다.

두암 고택은 조선 시대 살림집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 가옥과 생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 솟을삼문 : 문이 세 칸인 대문에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양쪽 대문보다 한 단 높게 세운 대문
  • 위패 : 죽은 사람의 이름과 죽은 날짜를 적은 나무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학자 김우익(1571-1639, 호 두암)이 분가하면서 지은 살림집이다.

중앙에 ‘ㅁ’자로 된 안채가 있고, 건물의 향좌측에는 사랑채 건물이, 향우측 담장 바깥쪽에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중 안채만 김우익이 1590년에 세운 것이며, 건물들은 모두 둥글고 큰 돌을 쌓아 만든 기단 위에 지어져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온돌방, 중문, 고방, 온돌방 순서로 공간을 배치했다. 왼쪽 끝에는 사랑채 역할을 하는 마루방을 두었는데, 다른 곳보다 건물의 높이도 살짝 높아 출입을 위한 계단이 별도로 있으며, 옆으로도 약간 돌출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온돌방과 부엌이 있고, 끝에 손님 접대를 위한 사랑방이 있다. 사랑방은 건물 바깥쪽에서 쪽마루가 덧달아져 있다.

사당과 사랑채는 그의 후손들이 후대에 지은 것이다. 사당에는 김우익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사랑채는 김우익의 손자인 김종호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건물로 그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였다./ 김우익의 손자 김종호가 지은 것으로 자신의 호를 따서 건물 이름을 붙였다.

  • 김종호가 사랑채를 지었다고 설명한 곳도 있으므로 확인 필요함. / 김우익이 지었다고 한다면, 김우익은 1660년에 생원시에 합격했다고 하므로 17세기 무렵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음.
  • 고택 체험 시설로 운영되고 있어 집 안에 현대식 화장실이 있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