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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구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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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구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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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구음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구음재
영문명칭 0
한자 陜川 龜陰齋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신등가회로 671-48 (가회면)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4호
지정일 1983년 8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합천 구음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구음재는 소요당(逍遙堂) 윤언례(尹彦禮) 선생이 학문과 후진 양성을 위해 1573년(선조 6)에 지은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810년(순조 10)에 고쳐 지은 것이다. 윤언례는 조선 선조(宣祖) 때의 학자로 곽재우(郭再祐) 장군을 도와 의병을 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재실은 조상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역할이 중심이지만, 구음재에는 재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있으며, 본채인 구음재에도 신추당(愼追堂)과 육영재(育英齋)와 같은 현판이 걸려있어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는 장소로도 이용되었던 것 같다.

건물은 ‘ㄷ’자형의 본채와 ‘ㅡ’자형의 행랑채로 구성되었고, 입구에는 장방형의 연못이 있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구음재는 복합적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윤언례(1526-1598)가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73년에 처음 세운 소요당에서 비롯하였다. 건물 이름은 후대에 바뀌었으며, 지금의 건물은 1810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윤언례는 조선시대의 학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곽재우를 도와 의병을 일으켰다.

이곳은 선조의 제사를 준비하는 재실이자 친족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으며, 강학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내에는 본채인 구음재 외에도 책판을 보관하기 위한 장판각과 고직사, 행랑채가 있다.

본채 건물은 경사지에 돌로 쌓은 축대 위에 ㄷ자형으로 지어졌다. 중앙부에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건물의 왼쪽 날개 부분에는 부엌과 방을, 오른쪽 날개에는 방과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두었다.

장판각에는 윤탁(1554-1593)과 윤선(1559-1640)의 문집 책판 총 86매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대부분 도난당했고, 지금은 후손들의 집에서 나머지를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윤탁과 윤선은 이 마을에 세거했던 파평 윤씨 가문의 일원이며, 두 사람 모두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다.

  • 윤언례는 윤선의 아버지이고, 윤탁은 윤선과 사촌지간이다.(윤탁의 아버지 윤언효가 윤언례의 형이다.)

참고 자료

  • 합천 구평 윤씨 신도비 항목 참조 -> 윤탁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켰고 곽재우와 함께 영남지역에서 활약하다가 2차 전주성 전투 때 전사했다. 세자의 스승을 지내기도 했던 윤선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을 보좌하였고 광해군 즉위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 합천 가회면 구평마을, 나를 위한 쉼표 하나,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eejs3176&logNo=220636154021&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장판각에 보관되어 있던 문집 책판은 도난 우려 때문에 다른 곳에 두었다.
  • 합천 구음재, 경남관광 길잡이 문화재 DB http://tour.gyeongnam.go.kr/index.gyeong?menuCd=DOM_000009404005001000&no=221&page_no=1436&reurl=DOM_000009404005000000 -> 구음재는 재실의 고유 기능인 묘제(墓祭)시 참제인(參祭人)이 사용하는 숙박소일 뿐만 아니라 시인묵객을 접대하는 정자의 기능 그리고 강학하는 교육적 기능을 하는 복합적 건물이다. 처음 재실명을 소요당으로 했지만 후에 구음재로 개명(改名)하였고 1810년(순조 10)에 중건하였다. / 구음재의 평면은 ㄷ자형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1칸의 몸채에 정면 좌우측에 2칸을 부가한 형태이다. 몸채의 평면은 가운데 3칸의 마루를 두고 좌우측에 온돌방(소요당)을 둔 형태이다. 좌측부분의 돌출부는 부엌과 온돌방愼追堂으로 구성되어 있고 우측부분의 돌출부는 온돌방과 누마루(育英軒)로 구성되어 있다. / 구음재는 곽재우 장군의 훌륭한 동료였던 호조판서에 증직된 구산(龜山) 윤탁(尹鐸)과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을 지낸 추담(秋潭) 윤선(尹銑)이 뜻을 세워 공부하던 곳으로 그들이 쓴 책들을 보관하고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 도난문화재 정보 - 합천 함방리 구음재 목판 http://www.cha.go.kr/robbery/selectRobberyView.do;jsessionid=0sgYaTH2Vqndy8AzRAdznp1HcVTcWFVPbBEB9Vjqvv4BAN4kM3dfT3BENphUhiwH.new-was_servlet_engine1?id=105&pageIndex=49&mn=NS_03_12&strWhere=&strValue=&sdate=&edate= -> 도난일자 1993년, 총 86판 중 71판 도난.
  • 심재근의 우리땅 순례(69) 황강 16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경남신문, 2012.3.7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21029 -> 윤창근씨에 따르면 추담 및 구산선생의 문집책판이 구음재에 있었으나 도둑이 들어 가져가고 남은 일부 책판은 각각 후손의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