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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은헌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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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은헌 고택
진주 평촌 은헌 고택, 진주 관광, 진주시청.
대표명칭 진주 은헌 고택
한자 晋州 隱軒 古宅
주소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 오봉산로983번길 27-8 (평촌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5호
지정(등록)일 2004년 3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진주 은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은헌고택은 은헌 한사원(韓士源, 1860~1908)이 지은 것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방앗간채가 남아 있다. 안채의 뒤쪽에 부녀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한 점, 사랑채는 대청마루 외에 별도의 마루 공간을 만든 점 등 민가가 변해 가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문살 모양도 은헌고택 건축을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이다.

평촌의 청주한씨 집안은 50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하면서 근대 시기에 농업용 못 준설 부지 제공, 학교 설립, 이웃 돕기 등 지역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해 마을 주민들이 그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송덕비를 세웠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마을의 지주였던 한사원(1860-1908, 호 은헌)이 지은 살림집으로, 1900년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집은 안채, 사랑채, 서행랑채, 곳간채, 방앗간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의 뒤쪽에 별도의 담장을 설치해 부녀자를 위한 활동공간을 마련한 점이나, 사랑채 건물 좌우에 별도의 마루를 두어 공간 분리를 시도한 점은 근대 한옥의 공간 활용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다.

중도마을은 연산군의 폭정을 피해 은거한 한승리(1477-1496)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청주 한씨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마을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가문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송덕비가 남아 있다.

  • 진한 글씨 내용 검토 필요 : 기존 문안 기준 작성 / 사진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정보 확인 더 필요할 듯(사랑채 공간 분리 언급은 진주 관광 홈페이지 참조한 것인데, 사진 상으로는 좌우에 마루를 두었다는 특이점은 확인되지 않으며, 향좌측에 난간 두른 누마루가 있는 것이 더 눈에 띔)
  • 대문채는 허물어져 사라졌고, 동행랑채는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 안채는 경남지역 민가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 좌우측에 대청마루를 두어 사랑채의 공간을 양쪽으로 나누었는데, 한쪽은 손님을 맞이하고 나머지 한쪽은 자녀들의 공부방으로 활용한 것이다.
  • 곳간채는 중앙에 기둥을 세워 건물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한 구조이다.
  • 지붕 박공면 장식이나 다양한 문살의 모양도 살펴볼 만하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