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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고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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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고산정
진주 고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고산정
한자 晉州 孤山亭
주소 경남 진주시 대평면 대평로 57번길 57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3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진주 고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산정은 징사(徵士)* 학포(學圃) 정훤(鄭暄)이 세상을 피해 살던 곳이다.

고산(孤山)에 정자를 지었기 때문에 고산정이라고 하였다.

정훤은 광해군 시절에 폭정에 휩쓸리기 싫어 합천에서 이곳 대평으로 옮겨 와 세상을 피해 살았다.

인조 시절에 영산현감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고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처음 정자를 지었던 고산이 1995년 남강댐 숭상공사로 물에 잠기게 되어 이곳으로 옮겨 지었다.


  • 징사 : 학식과 덕행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에 올라 벼슬에 나가거나 추천 받은 사람을 뜻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 조선 중기의 학자 정훤(1588-1647)이 은거하던 곳에 지은 정자이다.

정훤은 광해군(재위 1608-1623)의 폭정을 피해 고향인 합천으로 갔다가 44세 때 여기로 옮겨 와 은거하였고, 인조가 즉위한 후에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

주요 건물인 정자와 사당은 대문채부터 일자로 배치되어 있다.

정자 건물은 누각처럼 바닥을 지면에서 높게 띄워 올려 지어졌다. 좌우에 대청을 두고 중앙에 온돌방을 배치했으며, 뒤편을 제외한 세 면에 난간을 두르고 앞뒤로 퇴칸을 냈다.

그가 정자를 지을 당시의 지명이 ‘고산’이었기 때문에 정자의 이름을 고산정이라고 하였다.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해 진양호의 수위가 상승하면서 원래 자리에서 옮겨지게 되었고, 2006년 옛터인 고산이 잘 내려다보이는 현재 위치에 자리 잡았다.

  • 정자 왼편 ‘도연정’이라고 읽히는 현판이 걸려 있는 건물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보 확인 불가. 영역 내 다른 건물 더 있는지도 확인 필요해 보임.

참고 자료

  • 고산정, 진주관광 http://www.jinju.go.kr/02793/02258/02286.web?amode=view&idx=43 -> 광해군(光海君)의 폭정에 휩쓸리기 싫어 합천에서 대평(大坪)으로 옮겨와 이곳에서 정자를 지어 고산정이라 하고 은거생활을 하였다. 인조(仁祖)때 조정에서 조봉대부(朝奉大夫), 영산현감(靈山縣監)으로 천거하였으나 고사하고 이곳에서 학포정사(學圃精舍)라 하여 이름 짓고 여생을 보냈다. 정자와 사당이 앞뒤로 나란히 이(二)자 모양으로 배치하였고, 고산정의 정면으로 대문간채를 두어 일직선상의 배치를 중심으로 하여 부속건물들을 배치하였다.
  • [진주역사문화찾기] 學圃 정훤 선생, 고산정에 머물다, 경남연합신문, 2018.2.27. http://www.knyh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3 -> 인물 생애 확인
  • 고산정(진주), 산천과 도시를 찾아서,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tyhan2004/221166052108 -> 정자 옆 건물(도연정 현판) 사진 확인
  • 실향민들의 역사를 간직한, 진주 동네투어 – 대평리, 진주관광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arl286/222156345792 -> 고산정은 원래 대평면 고산이라는 산에 있었는데, 진양호의 수위가 상승하며 지형이 물에 잠기게 되었고, 2006년 옛터인 고산이 잘 내려다보이는 현재 위치에 옮겨 세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