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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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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사직단
진주 사직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사직단
한자 晉州 社稷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1246-1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제291호
지정일 2018년 8월 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688
웹사이트 진주 사직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주례(周禮)』에 잘 규정되어 있는데, 좌묘우사(左廟右社) 즉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라 하였고,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禮)』에 기록되어 있는 조선 초기의 사직단을 보면 사단은 동쪽에 직단은 서쪽에 위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 시대 때 사직단을 세웠으며 궁궐의 오른쪽에는 종묘를 설치하고 왼쪽에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조선 태종 시절에 전국의 부・목・군・현에 사직단을 세우고 봄과 가을에 사직제를 지냈다. 제사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오다가 1908년 통감부의 칙령으로 폐지되었다.

진주사직단은 제단과 담, 출입 시설의 흔적이 남아 있어 지방에 설치되었던 사직단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매우 높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사직단은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나라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기록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이러한 제단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지역에 사직단을 설치하여 봄과 가을에 제례를 올렸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전국에 300여 개의 사직단이 있었으나, 일본이 조선을 강제 합병하기 직전인 1908년 일제에 의해 대부분이 철폐되었다.

진주 사직단은 진주 지역 학자가 1632년에 완성한 이 지역 기록인 『진양지』에 위치 등이 상세히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다른 지역의 사직단에 비해 제단과 담장, 출입 시설의 흔적이 비교적 잘 남아있어 지방에 설치되었던 사직단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