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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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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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인돌은 애구지 구릉 중심부의 평탄한 면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이다. 무덤구덩이를 2단으로 파고 그 구덩이에 돌널을 설치하였다.

8~9단으로 쌓아 올린 돌널 석벽은 정교해 보이나 엉성한 부분도 있으며 무덤구덩이와 돌널 사이의 공간을 충전석으로 채웠다. 충전석 위에 뚜껑돌 7장을 덮고, 뚜껑돌 틈새와 위에는 밀봉석을 덮어 둔 형식이다. 고인돌과 인접한 70호 덧널무덤 상부에서 확인된 거대한 돌은 이 고인돌의 덮개돌로 추정되고 있다.

돌널 내부에서 붉은 간 토기 1점, 돌 화살촉 28점이 출토되었다. 돌 화살촉 가운데 10점에서 화살대 흔적이 확인되었다. 충전석 사이에서는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이 고인돌은 애구지 언덕 정상에 단독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상당히 공을 들여 매장 시설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많은 양의 돌 화살촉이 함께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김해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이끌었던 인물의 무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변에 삼국시대의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일부 파괴되었다.

긴 네모꼴의 구덩이를 파서 중앙에 돌널을 만들고, 주검과 껴묻거리를 넣은 후 돌 뚜껑을 덮고 그 위에 돌과 흙을 채워 완성하였다. 무덤방의 규모는 잔존길이 6.8m, 너비 4.4m로 대형에 속하며, 7매의 판석으로 덮여 있었다. 껴묻거리로는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