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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오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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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1월 6일 (금) 04: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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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오작당
Ojakdang House, Sangju
상주 오작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오작당
영문명칭 Ojakdang House, Sangju
한자 尙州 悟昨堂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선상서로 1975 (낙동면)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2호
지정(등록)일 1982년 2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상주 오작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주 오작당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조정(1555~1636)이 선조 34년(1601)에 지은 집이다. 상주 양진당(보물 제1568호)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에 뒷산을 등지고 장천과 주변의 넓은 말밭들을 향하고 있다. 인조 6년에 풍양 조씨 종갓집으로 양진당을 새로 건립해 옮겨 살았다. 그 후 조정의 증손자인 조대윤이 현종 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살림집으로 사용했다. 원래는 40여 칸이었는데, 정조 5년에 보수하면서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아 있다. 옛날 방식으로 만든 문과 창문 등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진당의 건축적 특징과도 유사한 점이 많아 그 가치가 높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의 왼쪽에 중간 문을 중심으로 좌우로 중문간채와 사랑채가 있는데, 앞면 7칸, 옆면은 1칸과 2칸이다. 사랑채 뒤로는 앞면 5칸, 옆면 2칸에 정지,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된 안채가 있다. 안채 뒤편 좌측 담장 모서리에는 가묘가 있고, 맞은편 담장 밖에는 조정의 불천위 사당*이 있다. 안채는 각 방이 앞뒤로 배치된 2층 구조이고, 부엌 위에 각종 집안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를 두었다. 네모기둥의 모서리를 깎아 둥글게 다듬은 기둥머리 위에 연꽃봉우리 조각재로 대들보를 받쳤다.


  • 불천위 사당: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사람에게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 혹은 지역 유림에서 허락해 제사를 지내는 집.

영문

Ojakdang House, Sangju

영문 해설 내용

오작당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조정(1555-1636)이 1601년에 처음 지은 집이다.

조정 가문은 1628년 종택인 양진당(보물 제1568호)을 인근에 새로 짓고 옮겨 살았고, 이후 조정의 증손자인 조대윤이 1661년 이 집으로 옮겨 살았다. 원래는 지금보다 규모도 크고 여러 건물이 있었지만, 1781년에 보수하면서 일부 건물들을 철거하였다.

지금은 안채, 사랑채, 중문간채, 사당이 남아 있다. 양진당과 유사한 건축적 특징을 보여주며, 앞선 시기에 지어졌기 때문에 양진당 건축의 원형으로 평가받는다.

중문간채와 사랑채는 중문을 사이에 두고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안채는 왼쪽에서부터 부엌, 안방,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부엌 위쪽에는 창고를 두었다. 안채 오른쪽 뒤편에는 조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참고자료

  • 나무과자,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marubo/13426434 -> 세부 사진 및 집 평면도
  • 제3차 문화재위원회(민속문화재분과) 회의록, 2020 -> 상주 오작당은 기록을 통해 창건 연대가 1663년으로 명확한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781년 중건 이후 익랑의 소실과 문간채의 변형을 고증할 만한 자료가 발굴되지 않아 건물의 원형을 추정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