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보리사지
의령 보리사지 Borisa Temple Site, Uirye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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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의령 보리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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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orisa Temple Site, Uiryeong |
한자 | 宜寧 普堤寺址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산156-1번지 외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190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수량/면적 | 4,882㎡ |
웹사이트 | 의령 보리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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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의령 보리사지는 보리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로, 절의 유래나 규모는 알 수가 없으나 신라시대의 오래된 절로 전해져 오고 있다. 당시 절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대부분 논밭이나 대나무밭으로 바뀌거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 건물 뒤편으로 높이 2m, 길이 40m 정도의 장대석*과 돌계단, 기둥받침돌, 석탑의 바닥돌 등이 남아있어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리사는 1948년 이곳에서 출토되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중인 금동불여래입상보물 제731호을 통해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곽재우가 15세 되던 해인 1566년에 이곳 자굴산 보리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망우집**』에 남아 있어 조선 중기까지는 보리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장대석(長臺石): 계단이나 축대를 쌓는데 사용하는 길게 다듬은 돌
- 망우집(忘憂集):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의 일대기와 시문 등을 기록한 책
영문
Borisa Temple Site, Uiryeong
This is the former site of Borisa Temple, which is presumed to have been founde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Very little is known about the temple’s history. In the collected works of Gwak Jae-u (1552-1617), who was a civilian army command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is mentioned that he studied at Borisa Temple in 1556. This record shows that the temple was still in existence at least until the mid-16th century.
Because most of the area that is presumed to have been occupied by the temple is currently covered with fields and a bamboo forest, it is difficult to estimate the actual size of the temple. However, the massive structural remains found on the site which include a stone foundation measuring 2 m tall by 40 m wide, stone stairs, pillar bases, and the base of a stone pagoda suggests that the temple was quite large in scale.
A gilt-bronze buddha statue discovered here in 1948 was designated in 1982 as Treasure No. 731 and is currently displayed at the Dong-A University Museum.
영문 해설 내용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리사라는 사찰의 터이다. 절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1552-1617)의 문집에는, 그가 1566년 이곳 보리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 보아 적어도 16세기까지는 보리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절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대부분 논밭이나 대나무밭으로 바뀌어 있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높이 2m, 길이 40m 정도의 장대석, 돌계단, 주춧돌, 석탑의 바닥돌 등이 남아있어,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48년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1982년 보물 제73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