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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보리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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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1166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0월 4일 (일) 15:51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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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보리사지
Borisa Temple Site, Uiryeong
대표명칭 의령 보리사지
영문명칭 Borisa Temple Site, Uiryeong
한자 宜寧 普堤寺址
주소 경상남도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 산156-1번지 외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90호
지정(등록)일 1997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4,882㎡
웹사이트 의령 보리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의령 보리사지는 보리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로, 절의 유래나 규모는 알 수가 없으나 신라시대의 오래된 절로 전해져 오고 있다. 당시 절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대부분 논밭이나 대나무밭으로 바뀌거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재 건물 뒤편으로 높이 2m, 길이 40m 정도의 장대석*과 돌계단, 기둥받침돌, 석탑의 바닥돌 등이 남아있어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리사는 1948년 이곳에서 출토되어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중인 금동불여래입상보물 제731호을 통해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에는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곽재우가 15세 되던 해인 1566년에 이곳 자굴산 보리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망우집**』에 남아 있어 조선 중기까지는 보리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장대석(長臺石): 계단이나 축대를 쌓는데 사용하는 길게 다듬은 돌
  • 망우집(忘憂集): 임진왜란 의병장 곽재우의 일대기와 시문 등을 기록한 책

영문

Borisa Temple Site, Uiryeong

This is the former site of Borisa Temple, presumably founde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Very little is known about the temple’s history. In the collected works of Gwak Jae-u (1552-1617), who was a civilian army commander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is mentioned that he studied at Borisa Temple in 1556. This record shows that the temple was still in existence at least up until the 16th century.

Because most of the area that is presumed to have been occupied by the temple is currently covered with fields and bamboo forest, it is difficult to make estimations about the actual size of the temple. However, the massive structural remains found on the site which include about 2 m tall and 40 m long foundation, stone stairs, pillar bases, and stone pagoda’s platform(s) suggest that the scale of temple was usually large.

Gilt-bronze Buddha statue discovered here in 1948 was designated in 1982 as Treasure No. 731 and is currently displayed at Dong-a University Museum.

영문 해설 내용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리사라는 사찰의 터이다. 절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1552-1617)의 문집에는, 그가 1566년 이곳 보리사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 보아 적어도 16세기까지는 보리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절의 영역으로 추정되는 곳은 현재 대부분 논밭이나 대나무밭으로 바뀌어 있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높이 2m, 길이 40m 정도의 장대석, 돌계단, 주춧돌, 석탑의 바닥돌 등이 남아있어, 절의 규모가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1948년 이곳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1982년 보물 제731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