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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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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궁과 월지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Gyeongju
경주 동궁과 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동궁과 월지
영문명칭 Donggung Palace and Wolji Pond, Gyeongju
한자 慶州 東宮과 月池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원화로 102
국가유산 종목 사적 제18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궁궐터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350,042㎡
웹사이트 경주 동궁과 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월성 옆에 만들어진 신라의 궁궐터이다. 동궁은 동쪽 궁궐이란 뜻이지만, 태자나 세자를 일컫는 말이자 그들이 거처하는 궁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14년(674) 왕궁의 정원이자 휴식처인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인공산을 조성하여 진귀한 동식물을 길렀고, 5년 뒤 연못 부근에 동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이 연못을 안압지(雁鴨池)라 하였다. 월지 서쪽의 임해전(臨海殿)은 동궁의 중심 건물로 귀빈의 접대나 큰 연회를 열었고,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을 이곳에서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기도 하였다.

1974년 월지와 주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연못 서쪽과 남쪽에서 건물터 26곳, 담장터 8곳, 배수로 시설 2곳, 입수구 1곳이 확인되었으며, 3만 여점에 달하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동궁 안의 생활 모습을 유추할 수 있는 생활 필수품과 목간(木簡)*을 비롯한 문자 자료들이 많이 출토되어 큰 관심을 끌었다. 연못 동편에서도 대규모 건물지들이 확인됨에 따라 신라 동궁은 월지를 중심으로 동, 서, 남쪽의 건물들을 포괄하는 대규모 궁궐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목간(木簡) :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에 죽간(竹簡)과 함께 문자 기록을 위해 사용하던 목편(木片).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