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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의암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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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의암고택
상주 의암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의암고택
한자 尙州 依巖古宅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41-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3호
지정(등록)일 2012년 10월 2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곽(5동)
웹사이트 상주 의암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주 의암고택은 풍양 조씨가 오래 전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마을 복판에 지어진 살림집이다. 당대 유학자로 널리 알려진 조범구(1834~1896)가 살던 곳이라 하여 그의 호(號)를 따 의암고택이라 불렀다. 안채는 1800년경에 모임당 연안 이씨와 큰아들 조식이 건축했고, 그 외의 건물은 1910년 무렵에 조태연이 낡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것이다. 의암고택은 조선 후기 상류 주택의 구성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어 당시의 상주 지역 상류 주택의 건물구성과 배치 특성을 살필 중요한 자료이다.

대문간채를 들어서면 사랑마당과 함께 ‘ㄴ’자 모양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뒤로는 위패가 모셔져 있는 사당이 있다. 사랑채 서쪽에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각종 곡식을 보관하던 ‘ㄱ’자 모양 곡간채와 ‘ㅡ’자 모양 안채가 마주하고 있다. 안채 뒤뜰에는 장독대가 있고, 옆에는 잡곡을 저장하던 창고인 뒤주가 있다. 집은 남동쪽을 향하고 있다. 안채는 부엌과 안방, 새며느리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랑채는 사랑방, 새사랑방, 책방, 마루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의암고택은 풍양 조씨 집안에서 지어 사용하던 살림집이다.

안채는 1800년 무렵 모임당 연안 이씨(1749-1826)와 맏아들 조식(1774-1837)이 지었고, 이후 1910년 조태연(1877-1934)이 집을 확장해 지금의 규모로 다시 지었다.

집은 안채, 안사랑채, 사랑채, 곳간채, 대문간채, 사당, 창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에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과 안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방 앞에 높은 다락 형태의 툇마루를 단 새색시방이 있다. 안채를 기준으로 동편에 시어머니가 거주했던 안사랑채가 있고, 건너편에 곳간채가 있다.

사랑채는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 툇마루를 단 구조이다. 왼쪽 가장 끝방은 서재로 이용했으며, 오른쪽 끝에는 누각처럼 난간을 두른 마루를 달았다.

집의 이름은 후대에 붙인 것으로, 병인양요 때 상주에서 의병을 조직했던 조범구(1834-1896, 호 의암)의 호에서 따왔다.

이 집으로 드나드는 대문 앞에 있는 탕건 모양의 큰 바위가 있는데, 이를 ‘의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 모임당 연안 이씨는 검간 조정의 7대손 조형연(1750-1783)의 부인이다. 34살의 나이에 남편이 죽은 후 집안을 이끌어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 이 집은 새 며느리가 들어오면 시어머니가 안사랑채로 거처를 옮기고 안채를 며느리에게 내어주었다고 한다. 안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서는 문이 없다.
  • 집 앞 바위와 관해 꿈에서 이 바위를 보거나 만지면 잘 되는 일이 많아서 바위에 의지한다는 뜻으로 ‘의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