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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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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석사당(178-2)
창석사당(178-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석사당(178-2)
한자 蒼石祠堂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가천3길 70 (청리면, 창석사당(경북문화재자료제178-2호))
국가유산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8-2호
지정(등록)일 1986년 12월 11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창석사당(178-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석사당은 이전의 동생인 이준(1560∼1635)을 모시는 불천위 사당*으로 효종 7년(1656)에 다른 곳에 세운 것을 영조 47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체화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78-1호)과 이전을 모시는 월간사당의 북쪽에 창석사당이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활약하고 지역 교육과 학문에 큰 업적을 남긴 이준을 기리는 사당으로서 역사적, 건축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앞에서부터 출입문과 재실*, 사당이 일직선상에 위치하고, 재실 앞마당 북쪽에 관리사가 있다. 재실은 앞면 4칸, 옆면 1.5칸 규모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로 온돌방과 툇마루를 둔 기와집으로 ‘ㅅ’자 모양 지붕을 올렸다. 관리사는 앞면이 4칸, 옆면이 1칸 규모에 정지, 방 2개, 고방으로 구성된 기와집으로 ‘ㅅ’자 모양 지붕을 올렸다. 별도의 출입문과 흙돌담으로 경계를 지은 사당은 앞면이 3칸, 옆면이 1.5칸으로 방의 구성과 모양, 뼈대 짜임새가 월간사당과 비슷하다.


  • 불천위 사당: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사람에게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 혹은 지역 유림에서 허락해 제사를 지내는 집.
  • 재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준(1560-1635, 호 창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준은 형 이전(1558-1648)과 함께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전쟁 이후 상주 지역의 여러 선비들이 뜻을 모아 세운 사설의료기관 존애원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앞에서부터 출입문과 재실, 사당이 일직선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재실 앞마당에 관리사가 있다.

사당 건물은 177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고 하며, 형의 위패가 있는 월간사당과 건물 구조가 동일하다.

이준은 특히 형과의 우애가 깊었다. 임진왜란 중 왜적이 갑자기 쳐들어왔는데 급병이 나서 도망갈 수 없게 되자, 형이 동생을 업고 왜적과 싸우며 백화산 정상까지 올라 둘 다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형제급난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7호)는 이준이 1604년 사신단의 서장관 자격으로 명나라에 갔을 때 중국인 화공이 그린 것이다.

  • 기존 국문의 설명 속 재실이 정말 ‘재실’인지, 관리사는 정말 관리사인지...? (-> 재실을 강당으로, 관리사를 동재(와 서재)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음 – 참고자료 중 다음블로그 )

참고 자료

*서정화, 『형제애의 본보기, 상주 창석 이준 종가』, 예문서원, 2013. -> 열람 후 원고 보완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