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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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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당
hyun, 도산서당, 현스바비큐아카데미,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도산서당
한자 道山書堂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 136 (도산1길 4)
지정(등록) 종목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2호



해설문

국문

‘도산 서당’은 진사 오도상이 17세기 후반에 자신의 자제와 인근 아이들을 교육시키던 곳이다. 이후 오도상의 사위로 예조 참판을 지낸 정택신이 물려받아 관리하였다.

고창 도산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서 도산 서원이라고 하지만 원래는 ‘섬뜸 서당’이다. 1862년에 만수 김영철*이 매입하여, 1907년에 본래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강당을 짓고 자기 호를 따서 ‘만수당’이라고 하였다.

도산 서당은 도산 초등학교가 개교(1934)할 당시에 학교 교실로 사용되는 등 서당 교육과 근대 교육을 연결해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서당에는 당대 명사들의 시문과 송사 기우만이 쓴 ‘만수당기’ 등의 시판과 기판이 걸려 있다. 강당인 만수당과 회천 정사, 정자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후원 등에서 당시의 격조 높은 서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김영철: 기우만이 1895년 명성황후 살해 당시에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격문을 각 군에 발송할 때에 고창의 책임자였으며, 동학 농민 혁명 직후에 동학군을 토벌하는 고창현 수성청의 참모로 활동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당은 마을 단위로 설립한 초등 단계의 사설교육기관으로, 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한문을 가르쳤다.

도산서당은 조선시대의 진사 오도항(吳道恒)이 17세기 후반에 자신의 자녀 및 인근 아이들을 교육하던 장소이다.

오도항의 사위였던 정택신(鄭宅臣)이 인수하여 관리하던 것을 1862년 김영철이 매입하여 거주하였으며, 1907년 김영철의 장손이 본래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강당을 지은 후 김영철의 호를 붙여 ‘만수당’이라고 하였다.

경내에는 강당인 만수당 외에도 회천 정사, 정자와 연못으로 이루어진 후원 등이 있다.

회천 정사는 김영철의 후손인 김정회(1903-1970)가 자신의 부친을 위해 본가 앞에 건립했던 것을 광복 후 현재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마을의 이름을 따서 ‘도산서당’이라고 부르지만, 본래 이름은 ‘섬뜸 서당’이다. 이곳은 1934년 도산초등학교의 개교 당시 한 학기동안 학교 교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 현스바비큐아카데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ejhyun20/220950950798 -> 사진 출처

  • 디지털 고창문화대전

http://gocha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gochang&dataType=01&contents_id=GC02800589 -> 기본 정보 (이름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