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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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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사각
어사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어사각
한자 御賜閣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모양성로 76 (교촌리)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어사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어사각’은 조선 시대에 왕이 내린 크고 높게 지은 집을 말하며, 정려각이라고도 한다. 정려각은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서 정려 받은 사람의 이름과 행한 일 등을 기록한 나무판이나 비석 등을 세우고, 지방의 관리로 하여금 보호하게 하였다.

고창의 ‘어사각’은 왕명에 따라 지었다 하여 어사각이라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호남에서 전사한 김해 김씨 삼현파 김극일의 후손 25명과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순절한 부인 5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605년에 이들의 충의를 기리고자 선조 임금이 ‘선무원종공신’을 하사하고, 옥쇄가 찍힌 공훈록 『단서철권』이라는 책을 내렸다. 1749년에는 영조 임금의 명으로 ‘각’을 하사하여 ‘어사각’이 되었다. 어사각에는 『단서철권』이 보존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정려각은 단칸 팔작지붕의 화려한 집이나, 고창 어사각은 솟을대문과 3칸의 맞배지붕으로 간략함과 검소함이 남다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내린 정려를 보호하기 위해 세워진 정려각이다. 왕명에 의해 지어진 정려각이기 때문에 ‘어사각’으로 불린다.

어사각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호남 지역에서 순국한 김축 등 김해 김씨 삼현파 후손 25명과,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순절한 부인 5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김축은 임진왜란 당시 80세의 고령임에도 일족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왜적과 싸우다가 아들, 조카들과 함께 순절하였다.

조선 선조는 1605년 이들의 충절을 기리고자 ‘선무원종공신’을 하사하고, 왕의 옥새가 찍힌 공신녹권을 /『단서철권』이라는 책을 내렸다.

1749년에는 영조가 전각을 하사하고, 이곳에 『단서철권』을 보관하도록 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면 솟을대문을 통해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어사각은 외관이 화려한 일반적인 정려각과는 달리 간소한 편이다.

  • 기울임꼴 글씨 선택 필요함 (1. 공신명 밝혀 쓸 지 /2. 책 이름 쓸지)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