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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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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용산리분청사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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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창용산리분청사기요지
영문명칭 0
한자 高敞龍山里粉靑沙器窯址
주소 전북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437-438번지 산159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115호
지정(등록)일 2002년 8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요업/도자기가마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2,000㎡)
웹사이트 고창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요지'는 도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분청사기’는 회색 또는 회흑색의 도자기를 만드는 흙 위에 정선한 백토를 표면에 바르고 유약을 발라 구운 조선 초의 대표적 도자기이다.

고창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는 2001~2002년 전라북도에서 최초로 발굴 조사한 분청사기 가마터이다. 발굴 조사 결과 가마 4기와 자기 퇴적층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분청사기 요지는 귀얄(표면을 솔질로 자국을 남기는 기법), 덤벙(도자기의 아랫부분을 잡고 백토에 담가 모양을 내는 기법), 인화(표면에 문양 도장으로 찍는 기법) 기법의 분청사기, 흑유 자기(흑갈색의 유약을 바른 그릇), 백자, 옹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대규모 가마터이다.

또 궁중의 음식, 술 등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한 관청의 이름이 찍힌 유물이 출토되었다. 경기도 광주의 관요 양식인 ‘현(玄)’자 명의 백자 접시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이러한 양식이 지방에까지 유행하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리 분청사기 요지에는 가마의 천장부가 남아 있고, 계단 모양의 소성실(자기를 굽는 곳)이 있다. 이는 15~16세기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흑유 자기 등의 양상을 살필 수 있고,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전개 과정 등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창 용산리는 주진천을 따라 옛 뱃길이 닿고 주위에 좋은 흙과 나무가 풍부하여 가마터로 적합한 장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15세기에서 16세기에 걸쳐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이다. 분청사기는 청자에 백토로 분을 발라 다시 구워낸 도자기를 말한다.

이 가마터는 제방 공사 중 유구가 드러나 2001년-2002년 사이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가마 4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특히 온전한 형태의 아궁이와 굴뚝부, 계단 형태의 소성실을 비롯해 천장부 일부까지 남아 있는 가마의 존재도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다양한 기법으로 만들어진 분청사기들과, 흑갈색 유약을 발라 만든 그릇, 백자, 옹기 등이다. 연꽃무늬, 물고기무늬, 모란무늬 등으로 장식된 접시, 잔, 병 등 일상생활용 그릇들이 많이 출토되었고, 이외에도 조선시대 궁궐에 공급하는 음식이나 술 등을 관리하는 관청을 나타내는 ‘내섬’ 혹은 ‘예빈’ 등의 글씨가 찍혀있는 그릇들이 발견되었다.

고창 용산리는 주진천을 따라 옛 뱃길이 닿고 주위에 좋은 흙과 나무가 풍부하여 가마터로 적합한 장소이다. 이곳은 전라북도에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최초의 분청사기 가마터로, 관청용 그릇부터 민간에서 쓰이는 그릇까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또 가마의 천장부가 남아 있는 점과 계단형 소성실이 사용된 점 등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