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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정사(사당,홍의재,경의당,상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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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오정사(사당,홍의재,경의당,상운루)
용오정사(사당,홍의재,경의당,상운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용오정사(사당,홍의재,경의당,상운루)
한자 龍塢精舍(祠堂,弘毅齋,敬義堂,祥雲樓)
주소 전북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 산33번지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1호
지정(등록)일 1980년 3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용오정사(사당,홍의재,경의당,상운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사’는 학문 연구나 정신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용오*정사는 조선 고종 때인 1885년에 무장의 유생들이 기삼연과 정관원의 영정을 안치하기 위해 세웠다.

용오 정사에는 내삼문 상운루와 사당 덕림사, 숙소 홍의재, 강당 경의당 등이 있다. 홍의재는 S자형으로 구부러진 나무의 중심선을 절묘하게 맞춘 기둥과 연기 막이가 독특하다.* 덕림사는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 있는 화려한 다포 양식의 건물이다. 상운루와 덕림사는 정읍 입암에 있었던 보천교* 건축물 중 일부를 1930년대에 이곳으로 이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용오': 구한말 기삼연과 함께 의병을 일으킨 정관원(1857~1920)의 호이다.
  • 고수면에 있는 문수사 대웅전을 고쳐 지은 대목장 유익서의 솜씨로 알려져 있다.
  • 보천교: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연기동 태생의 차경석(1880~1936)이 동학 운동을 하다가 강증산을 신앙 대상으로 하여 창시한 민족 종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정관원(1857~1920, 호 용오)의 행적을 기리고, 그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정관원은 1896년에는 일본에 맞서 장성의 기삼연(1851-1908)과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에 나선 의병장이었으며, 고종 임금이 돌아가시자 마을 뒤 바위 위에서 곡을 하다가 1920년에 세상을 떠났다.

경내에는 덕림사(사당)를 비롯하여 강당(講堂)인 경의당(敬義堂), 내삼문(內三門)인 상운루(祥雲樓), 서재로 쓰인 홍의재(弘毅齋)와 외삼문(外三門)까지 총 다섯 채의 건물이 있다.

정사의 대표 건물은 사당인 덕림사이다. 덕림사는 정관원이 곡을 했던 자리라고 알려진 곳에 전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대편수(大片手) 유익서가 1934년에 세운 것이다. 이 때 정관원의 아들 정방규를 추가로 배향해 지금은 정관원과 정방규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이 건물은 외벽에 그린 벽화에 연꽃과 모란 등과 더불어 자동차, 맥주병 등의 서양 문물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 특이하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지역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다른 건물들에서도 독특한 건축 방식을 학인 할 수 있다. 내삼문인 상운루는 중앙 문 옆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모정(茅亭) 형식의 작은 누각이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또 홍의재(弘毅齋)는 자연목으로 세운 S자형의 기둥이 특이하다. 이 기둥은 처음과 끝의 중심축이 일치한다고 하며, 용이 승천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 건물의 연기 막이도 사선으로 처리되어 독특한 건축 수법을 보여준다.

  • 기존 국문 설명 중 ‘1885년에 무장의 유생들이 기삼연과 정관원의 영정을 안치하기 위해’라는 내용은 다른 문화재 안내에서도 언급되나, ‘1885년’은 기삼연과 정관원의 생몰년을 감안하면 모순이 있으며 현재 사당에 기삼연의 영정이 없는 이유 등을 알 수 없음. ->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 확인도 어려우므로 언급하지 않음.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