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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 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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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성 동헌
흥성 동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흥성 동헌
한자 興城 東軒
주소 전북 고창군 흥덕면 동헌길 4 (흥덕리)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7호
지정(등록)일 1976년 4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흥성 동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동헌'이란 조선 시대 각 군현에 파견된 수령이 공무를 보던 곳이다. 지방 관아는 수령이 사무를 보는 외아와 가족이 거주하는 내아로 구분하는데, 외아가 내아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헌’이라고 하였다.

흥성 동헌은 본래 흥덕 객사로 알려진 건물이다. 그러나 1983년에 건물을 보수할 때에 발견한 상량문*에서 동헌이었음이 밝혀졌다.*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으로, 상칠(上漆, 백제 시대), 상질(尙質, 신라 시대), 장덕(章德, 고려 시대) 등 시기별로 달리 부르다가 고려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왕의 이름인 ‘장’자를 피해 ‘흥덕(興德)’으로 바꾸어 불렀다. 1895년(고종 32)에 흥덕군이 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무장군과 함께 고창군으로 통합하여 흥덕면이 되었다.


  • 상량문: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까닭과 공역한 날짜, 시간 등을 적은 글
  • 상량문에는 흥성 읍성(지금의 배풍산 자리)의 동헌을 조선 1807년(순조 7)에 현 위치로 옮겨지었다고 써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조선시대 흥덕현의 수령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으로, 고려 충선왕 때부터 지금의 지명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건물은 본래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는 정당과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로 구성되어 있는 ‘객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83년 건물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어 동헌이었음이 밝혀졌다.

동헌 건물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딸려 있는 형태이다.

이 건물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1735년 현감이었던 김정연이 복원하였다고 전하며, 18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고 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