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함양 교수정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7월 18일 (토) 15:50 판 (참고자료)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함양 교수정
Gyosujeong Pavilon, Hamyang
함양 교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교수정
영문명칭 Gyosujeong Pavilon, Hamyang
한자 咸陽 敎授亭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
지정(등록)일 1983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양 교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교수정은 고려 말기 문신인 덕곡 조승숙(德谷 趙承肅)이 태조 7년(1398)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현재의 건물은 1872년경에 고쳐 지은 것이다.

조승숙은 고려 우왕 7년(1381)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나라 사신으로 간 중국에도 이름을 널리 알렸으나 조선 태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두문동 72현(賢)의 한 명으로 목은 이색, 야은 길재와 도의로 친교를 맺고 성리학을 강론하였다. 성종(1469~1494)은 조승숙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사제문(賜祭文)을 내렸는데, ‘수양명월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 이라는 여덟 자를 자연 암반에 새기고 거북머리를 조각하여 비를 세웠다. 비의 높이는 320cm, 폭 90cm, 두께 39cm이다.

교수정은 지곡천의 왼쪽에 있는 작은 독립 구릉의 정상부에서 남동쪽을 향해 있다. 온돌방 앞에는 고사리와 국화라는 뜻의 ‘미국(薇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조승숙의 충직함과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상부 가구는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과 기둥을 건너서 위에 얹은 나무)가 다섯 개이고 홑처마에 팔작지붕(지붕 위에 까치 박공(‘ㅅ’자 모양의 널빤지)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는 지붕) 형식이다.


  • 수양명월 율리청풍(首陽明月栗里淸風): 수양은 백이, 숙제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숨어든 산이고, 율리는 도연명이 은거했던 마을 이름이다. 성종이 조승숙을 수양산의 밝은 달(수양명월)과 율리의 맑은 바람(율리청풍)에 비유한 것이다.

영문

Gyosujeong Pavilon, Hamyang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고려 말의 문신인 조승숙(1357~1417)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1398년에 지었다. 현재의 건물은 1872년경에 고쳐 지은 것이다.

조승숙은 함양 출신으로 1377년 문과에 급제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은거하였으며, 교수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냈다.

정자는 마루와 온돌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자 내부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는데, 그중 온돌방 앞에 걸린 현판의‘미국(薇菊)’은 "고사리와 국화"라는 뜻이며 이 식물들은 충직함과 절개를 상징한다.

정자 뒤쪽의 협문 앞에는 19세기 후반 후손들이 세운 비석이 있다. 비석에는 "수양산의 밝은 달과 율리의 맑은 바람"이라는 뜻의 8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조선 성종(재위 1469-1494)의 명으로 지어진 제문에 있는 구절이다. 수양산은 중국 상나라의 인물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벌한 후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며 숨어든 산이다. 율리는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이 벼슬을 버리고 은거했던 고향마을 이름이다.

참고자료